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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category 글/책을읽다 2023. 12. 26. 13:54

pixabay

미도리 초록은 생이고 나오코 빨강은 죽음이다. 스스로 서지 못하는 이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삶을 주도로 살 수 있는 와타나베는 삶을 산다. 상실의 시대 초입은 와타나베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와타나베와 기즈키, 나오코는 함께 어울렸다. 와타나베와 기즈키는 친구다. 기즈키와 나오코는 연인이다. 어릴 때부터 만나 소꿉친구와 애인을 겸하고 있다. 그들은 셋은 함께 있을 때 관계에 대한 균형이 맞았다. 삶을 떠받치는 세 개로 된 받침대로 서로를 지탱했다. 그러던 중 기즈키 자살로 받침대 하나를 잃는다. 남게 된 두 개로 아슬아슬한 일상을 유지한다. 나오코 집에서 생일 축하를 하다 둘은 성관계를 맺는다. 나오코는 젖지 않아 기즈키와 하지 못 했던 성관계를 와타나베와 한다. 나오코는 오직 한 순간 젖고 와타나베를 받아들인다. 이후 나오코는 소식이 끊긴다. 와타나베는 그녀가 요양원에 있다는 편지를 받아들인다. 둘 사이 이어진 줄이 팽팽함을 잃었다. 힘겹게 이어진 시간은 혼돈이 된다. 나오코는 요양원에서 만난 레이코를 의지한다. 

레이코는 환자지만 입원비를 내지 않는다. 관리인과 친하며 비슷한 일을 한다. 요양원 식구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친다. 레이코는 피아니스트였다. 그 콩쿠르를 앞두고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피아니스트 길을 걸을 수 없게 된 레이코는 무기력한 자신을 느끼게 되고 정신병원을 다닌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일상이 찾아왔다. 열세 살 아이에게 레슨을 한다. 아이는 레이코 보다 영악하고 철두철미하다. 레이코를 강간하다 제지당하자 그녀를 폭행범과 정신병자로 만든다. 그녀는 이혼하고 요양원으로 들어온다. 밖에 나갈 날을 기대하지 않는다.

와타나베는 기숙사 생활을 한다. 같은 방을 쓰는 돌격대, 동류라고 주장하는 나가사와, 같은 수업을 듣는 미도리와 교류한다. 돌격대는 기숙사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 나가사와는 타인과 자신을 분리하는 점에서 와타나베와 자신은 동류라고 말한다. 나가사와 연인인 하쓰미, 그리고 와타나베는 가즈키와 나오코가 함께 했던 삼각 받침대를 연상하지만, 나가사와는 가즈키 보다 강했다. 그는 알을 깨고 나온 와타나베다. 외국으로 떠난 나가사와를 뒤로 하고 결혼한 하쓰미는 이 년 후 자살한다. 하쓰미 소식을 전하는 나가사와를 와타나베는 끊는다.

 

미도리는 와타나베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온다. 혼자 식사하는 그에게, 혼자 수업 듣는 그에게, 늘 제안하고 행동한다. 미도리는 틈을 만든다. 넓지 않지만 노력하면 들어갈만한 크기다. 와타나베는 비집고 들어가지 않는다. 곁에 있을 뿐이다. 미도리는 거짓으로 포장된 듯 열리지 않은 열매처럼 미숙한 자신을 두꺼운 껍질로 숨기려 든다. 순간 와타나베를 이끌지만 자신감은 목소리에 머물다 사라진다. 둘은 연인처럼 행동한다. 미도리는 남자친구,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있다. 둘에게 연인이라 말하는 이는 있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