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리에서 용정촌으로 배경이 옮겨왔다. 시간은 흘러 인물들의 성장 위치를 바꿔 놓았다. 출생과 죽음은 서로를 교환한다. 8권까지 2부가 끝났다. 진주로 돌아가는 서희의 발걸음이 끝이다. 길상에 대한 분노를 가슴에 가득 품은 서희다. 길상은 가족을 떠났다. 떠났지만 길상은 남은 것이다. 서희가 환국이, 윤국이와 함께 떠났다. 용이는 홍이와 임이네를 데리고 돌아간다. 월선은 용정에 묻혔다. 서희가 그녀를 병원에 보내 검진한 결과, 암으로 시한부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착해서 손해 본다는 이야기를 듣는 때가 있다. 조금 손해 보고 사는 게 낫다는 문장을 읽을 적도 있다. 김두수, 송애, 임이네로 대표되는 인물들은 자기가 내는 화에 대한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그리고 본인 행동을 정당화한다. 좋지 않은 환경을 스스로 반복한다. 점점 확장한다.
수치를 모르는 자, 세상에서 못할 것이 뭐 있겠는가. 한 마리의 이리가 대로상에서 대상이 무엇이든, 어린이 늙은이 아름다운 여인이든 먹이인 이상 찢어발기는 잔인성은 수치가 없는 수성 그 본능인 것이다. 그가 힘센 이리인 이상 힘이 미치는 데까지 잔인성은 발휘될 것이다. 늙고 이가 빠져 걸레 같은 한 마리의 이리가 되기까지, 그리고 죽을 때까지는. 포식을 하고 적당히 휴식하고 지극히 쾌적해진 김두수는 차부의 말없는 눈 따위, 회령 같았으면 얼굴에다 주먹질을 했을 테지만, 천천히 육중한 몸을 흔들며 새로운 여관에, 어쩌면 새로운 대상이 있을지 모르는 여관에 들어선 것이다. 358.
이동진은 고민이 많은 자다. 생각이 많다. 구시대 인물이어서 현시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생각하고 고민한다. 전면에 나서지 못하며 고민하지만 답을 내지 못한다. 회색 지대에 머무른 자는 생각이 많다.
김환과 길상이 나간 뒤 이동진은 오열한다.
'이 사람아, 석운(최치수의 호), 나는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네. 참말로 모르겠네. 이십 년을 방황하였건만 나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고 생각은 호박오가리처럼 쭈그러들었네. 저네들은 싱싱한 호박 넝쿨처럼 상방에다 줄기를 뻗고서 내 앞에 나타났단 말일세. 어떻게 그리 변신할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일세. 철사 같은 그 신경의 줄이 나를 휘감더군. 옴짝할 수 없게시리 나를 휘감더군. 우리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한갓 감상이요. 그네들이 추하다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었네. 내 노여운 음성은 허울만 남은 호랑이 울음이었고, 그네들의 맞서는 음성은 발톱으로 먹이를 찢어발기는 이리떼의 울음이었네. 이 사람, 석운, 늙은 탓이 아닐세 늙은 탓이 아니야. 그리고 우린 이조 오백 년의 무거운 세월을 싫든 좋든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지 ... ' 384.
중간 보다 극단을 따르는 자는 오히려 좋다. 스스로 생각할 필요로 결단할 필요가 없다. 역적이든 도둑놈이든 따를 자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낫다는 문장처럼.
"어쨌거나 세상에 태어나서 무엇이든 위하여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요. 역적을 섬기든 도둑놈을 섬기든, 위할 것이 없는 사람보담이야, 안 그렇소? 공노인."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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