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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시대를 지나며 읽히는 책을 고전이라 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읽지 않아도 내용을 아는 사람이 많다. 영화, 뮤지컬로 경험할 수 있다.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상상으로 해석해야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다. 의도를 보이는 문장이 있으나 명확하게 짚어주지 않으니 곱씹어봐야 한다.

 

지킬 박사는 혼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접근한다. 그런 그를 래뇬 박사는 못마땅해한다. 연구를 거듭하던 지킬은 부정한 것들을 한데 모으는 데 성공한다. 분리해 내지 못하고 지킬에서 하이드로 변한다. 외형이 함께 변해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부정, 악의, 살의, 기형, 왜소와 같이 수식되고 싶지 않은 의미를 가진 총체가 된다. 약을 스위치 삼아 지킬에서 하이드, 하이드에서 지킬로 오갔다. 출발은 지킬이었으며 종착은 하이드로 결정된다. 약을 먹지 않아도 하이드로 변한다. 약을 먹어도 지킬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기존 설정 값이 변했다. 

 

지킬과 어터슨, 래뇬은 각별한 친구다. 복잡한 구성을 담지 않았으나 등장인물이 가진 우정은 부러움을 부른다. 어터슨 같은 변호사를 곁에 두면 든든함과 편안함을 누릴 수 있다. 

 

어터슨에게 이는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연기는 쉬웠다. 왜냐하면 그는 여간해서는 자기 감정을 밖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데다가 그의 사교 생활 역시 따뜻한 관용의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사람들을 기존의 자기 교우 관계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겸손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이 변호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8.

이 문서는 어터슨 변호사에게 오래전부터 눈엣가시였다. 그는 변호사로서, 그리고 세상의 합리적이고 관습적인 면을 존중하는 인간으로서 상식을 벗어난 일은 천박한 것으로 여겼으므로 이 문서는 그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 게다가 자신이 하이드라는 사람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한데 이제 갑작스런 사태의 전개로 그는 그자를 알게 되었다. 21.

어터슨은 다른 손님이 돌아간 뒤에도 남아 있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일은 새삼스럽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터슨을 대단히 좋아했다. 파티를 주관한 사람들은 뱃속 편하고 말 많은 다른 손님들이 모두 문지방 바깥으로 나간 뒤에도 이 무뚝뚝한 변호사를 붙들어 두고 싶어 했다. 잘 나서지 않는 친구와 잠시 같이 앉아, 웃고 떠드느라 지친 정신과 긴장을 이 사람의 짙은 침묵 속에서 가라앉히고 고독한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36.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답게 그에 대한 설명이 초반에 등장한다. 변호사로 적절한 유형이다. 사회 시류에 적당한 흐름을 타며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사건을 사양한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겸손해 주위 사람들이 찾는 인간이다.

 

'꼭 짚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가 또 있어. 하느님 맙소사, 이자는 전혀 인간 같지가 않아. 원시인 같다고나 할까.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펠 박사 같은 자인가? 아니면 사악한 영혼의 빛이 육체의 형상에 스며들어 저렇게 변형된 것일까? 그런 것 같아. 아, 가엾은 내 친구, 헨리 지킬! 만일 인간의 얼굴에서 악마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자네 새 친구의 얼굴이 바로 그런 얼굴 일세.' 31.

그가 걸어가는 동안 씨름하고 있는 문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하이드는 얼굴이 창백하고 자그마한 사나이였다. 그는 꼭 짚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기형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의 미소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었고,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는 소심함과 대담함이 위험하게 섞여 있었다. 또 그는 쉰 목소리로 속삭이는 듯이 말했으며 말소리도 거칠었다. 모든 것이 어터슨에게 거슬렸지만 이것들을 모두 합쳐도 그자를 대할 때 어터슨이 느꼈던 알 수 없는 역겨움, 증오, 공포는 설명되지 않았다. 31.

 

외형에서 오는 거부반응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적으로 그런 반응을 부끄러워하고 뉘우친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같지 않음을 두려워함은 유전자 어디에 깊숙이 새겨져 있다. 다름과 낯 섬은 옳고 그름을 나누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하이드가 폭행과 살인을 저질렀지만 외형만으로는 판단되지 않아야 한다.

 

"공정하게 대우해 달라는 말이네.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나를 대신해 그 사람을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는 말일세." 40.

 

순수성을 추구하지만 불순물 없는 순도 100% 성질만으로 되어 있는 사람은 원하지 않는다. 무미건조, 지루한 천국보다는 적절한 고통을 가진 지옥을 선택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1886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주인공인 지킬 박사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선행을 베푼 유명한 의사지만 향락에 쉽게 빠지고, 무미건조한 학문 생활의 지겨움을 이기지 못한다. 그는 결국 ‘가끔이나마 신나게 놀고 싶은 충동’을 못 이겨 자기가 원할 때 변신할 수 있는 약물을 발명한다. 그 약을 들이키면 악마적 본성이 ‘망토를 껴입듯이’ 지킬 박사의 몸을 에드워드 하이드의 몸으로 바꾼다. 하이드의 몸으로 제멋대로 사고를 치다가 그게 싫증나면 다시 지킬의 몸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지난 악행을 회개하고 선행으로 지난 잘못을 보상하는 이중적인 삶을 즐긴다. 이렇게 충동적인 행동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지킬과 하이드는 주객이 전도되고 마는데…
저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출판
더스토리
출판일
202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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