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토지 12권, 박경리

category 글/책을읽다 2023. 12. 11. 10:37

suinaut

세대교체. 김환은 죽었다. 혜관은 떠돈다. 지삼만은 죽임을 당한다. 관수와 석이는 쫓긴다. 용이는 갑자기 떠난다. 입담이 강한 혜관과 공노인은 서로 측은해한다. 애정 주던 인물들이 사라진다. 어려운 삶을 산 기화는 희망을 얻자, 세상을 떠난다. 무심하게 툭하니 떠나보낸다. 영호, 김범석, 환국, 윤국, 순철, 인실을 소개한다. 젊은 매들. 어떤 하늘을 얼마나 날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 

휘청휘청 걸어 올라가는 강쇠의 얼굴에 옛날 동지였던 지삼만의 변신과 배반과 죽음에 대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환이 죽은 뒤 지삼만은 더욱더 깊이 주색에 빠졌다는 것이며 몸짓은 허황하게 더욱더 호들갑스러워졌고 웃고 울고 광대 같은 옥황상제 놀음에다 여자 옷을 입고 잠자리에 드는가 하면 동침하는 계집 가슴을 더듬으며 비수를 내놓으라고 소리소리 치곤 했다는 것이다. 28.
재떨이에 담뱃재를 떨며 공노인은 중얼거렸다. 혜관은 쭈그러든 공노인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며 수미산(須彌山)에 있다는 사대주 중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인간계를 잠시 생각 한다. 인간의 수명은 천세요. 아기는 길가에서 오가는 사람들 손끝으로부터 나오는 젖을 빨고 이레 동안 어른이 되며 고통이나 고민이 없고 의식의 걱정도 없으며 노쇠도 없으며 죽음은 슬픈 것이 아니요 길가에 꾸며서 내놓은 시체는 큰 새가 날아와 실어가고...... 혜관은 묘한 미소를 띠며,
"그러기 중 팔자가," 97.
"그러니 저울대 한복판에서 기울지 않고 사는 게요. 그게 못 견딜 노릇이지요. 세월 가는 것이 안타까운데 해는 길고, 자식이 있어 걱정, 없어도 걱정, 너무 사랑해도 외롭고 사랑이 없어 외롭고, 재물이 많으면 세상이 좁고, 재물이 없어도 세상이 좁고, 인간 고해 허우적거리긴 매한가지 아니겠소? 해가 길면 극락왕생이나 빌어야지요." 98. 혜관스님.

 

강쇠는 배신했지만 한때 동료였던 지삼만 죽음을 맞이하고 눈물을 흘린다. 병수는 자신을 버리고 오랜만에 찾아온 아버지 앞에서도 흥분하지 않는다. 순한 사람들.

'누가 나를 묶었나, 내가 나를 묶었지! 풀어라! 풀어버리는 거야!'
아우성이다. 부서지는 파도다. 격렬한 감정이 출구를 찾듯 아우성이다. 그러나 이상현에 대한 그리움은 아니었다. 조용하에 대한 증오도 아니었다. 자신의 생명, 생명의 불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기나긴 숨결, 부패의 늪에서 몸을 일으키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사는 게 아니다! 죽은 것도 아니다! 이것은 중독이야. 이 집안에는 사방에 독버섯이다!" 345. 임명희.

 

조용하는 임명희는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홍성숙과 만났지만 본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별장에서 처음 맞았을 때 성숙은 놀란다. 조용하 본성은 임명희와 동생 앞에서 두드러진다. 조용하에게 임명희는 부인이며 소유이며 자신 통제에 있어야 한다. 홍성숙은 그렇지 않기에 언제든 놓을 수 있다.  명희는 헤어질 수 없다.

 

기화는 언제부터 잘 못 되었나. 감당하지 못할 흥과 미모를 타고나서 풍파 속에 휘몰린 최참판 댁에서 자라 용정행정 선택하지 않았다. 기생이 되고 서의돈, 이상현과 마음을 섞었다. 이상현 딸을 낳았다. 기생답지 않았으나 기생이어야 했다. 

"누가 직인 것도 아니고 지가 지를 직인 것도 아니고 멩이다. 팔자라. 처음에 잘못되믄 끝까지 잘못되는 기고."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