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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 홍주, 송화는 사진신부다. 셋은 같은 마을에서 부산과 일본을 거쳐 하와이에 도착한다. 사진신부는 하와이 농장에 일하러 간 조선인 남자들이 신부를 구하기 위해 중매인에게 보낸 사진을 보고 하와이로 건너가 결혼하는 신부를 말한다. 농장에서 일하는 신랑은 고된 노동과 강한 햇빛 아래에서 백인 농장주들이 휘두르는 채찍에 몸은 상처투성이고 얼굴은 자기 나이보다 십 년은 더 들어 보였다. 하와이에 도착해 예비 신랑을 만난 신부들은 주저앉아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돌아갈 여비는 없고 결혼하러 떠난 신부가 돌아왔을 때 그들을 반길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그들과 살았다. 어떻게든 삶은 계속되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을 여러 권 쓴 이금이 작가다. 읽기 쉬운 문체로 속도감 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버들과 홍주, 송화가 주인공이며 버들을 보고 겪는 것으로 이야기를 끌어 간다. 읽는 중간 키득키득 혼자 웃었다. 버들이 바라보는 다른 주인공들은 활기찼고 자신에게 닥친 고난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극복했다. 그들은 햇빛이 비쳐 파도위에 비치는 금물결을 닮았다. 반짝반짝거렸다.

강 훈장은 돈 주고 산 양반임을 알면서도 열 살도 더 많은 안 부자를 형님으로 모셨다. 윤 씨도 안 부자댁을 형님으로 불렀다. 우애 좋은 어른들 덕분에 버들과 홍주도 단짝 친구가 됐다. 위아래 여형제들이 어려서 죽은 탓에 둘 다 고명딸이었다. 버들은 남매들 중 둘째이고 홍주는 오빠들과 터울 지는 막내였다. 13.

 

버들 부모는 가난한 양반이다. 홍주 아버지 안부자는 버들 아버지 강 훈장에게 훈장 자리를 마련해줬다. 강 훈장은 독립운동을 나가 죽어서 돌아왔다. 버들 큰 오빠는 행인을 괴롭히는 순사에게 대들었다가 말발굽에 채어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윤 씨는 남은 자식들이 독립 운동을 하거나 일본에 원한을 가지지 않도록 비밀로 했다. 버들은 가족사와 생계를 위해 삯바느질을 하는 어머니를 보고는 그녀에게 자신을 위한 삶이 있는지 의문이었다. 본인이 떠나 잘 살아주는 것으로 가족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말과 사진을 통해 본 태완은 마음에 서서히 커져가는 존재가 됐다.

 

홍주는 마산에 있는 뼈대 있는 양반가에 시집갔다. 연하였던 신랑은 몸이 좋지 않아 일찍 죽었고 홍주는 과부로 돌아왔다. 버들이 사진신부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안 부자 댁은 홍주도 같이 보내기로 한다. 상처하고 과부로 돌아온 홍주가 갇혀 살 것을 염려했다. 넓고 새로운 곳에서 자유롭게 살라며 홍주를 보낸다.

 

송화는 무당 딸이 동네 누군가에게 얻은 딸이다. 무당 할머니는 손녀가 천시받는 무당이 안 되길 바랬다. 울고불고하는 송화를 구포에 있는 중매인에게 맡기고 혼자 돌아온다. 절대 돌아오지 말라는 말을 남긴다. 옥화가 딸 송화와 함께 마을에 나타나면 어린아이들은 돌팔매질을 했다. 그 중에 버들과 홍주도 있었다. 옥화가 죽고 할머니는 송화를 마을에 보내지 않았다. 옥화처럼 이름 모를 씨를 담아올까 겁났다. 송화는 사람을 대하는 게 두려웠고 낯설었다.

 

항일 독립 운동과 이승만, 박용만을 둘러 싼 미국 이민 사회에서 표출되는 갈등을 다뤄 조선에 대한 역사가 담겨 있다. 크게는 한 나라에 대한 역사이야기다. 그 속에 힘없는 국민들이 새로운 환경을 살아내는 인생 전체를 이야기로 듣는 기분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적응하고 억척같이 살아내는 그들은 잡초와 같이 조선과는 다른 토양에 뿌리내렸다.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일본 국적을 가진 이민자에 불과한 상황을 바꿔보려는 아들과 꿈을 펼치려는 상상으로 가슴 벅차는 딸이 그들에게 미래였다.

포와에 가고 싶었다. 공부하고 싶었다. 앞으로도 과부의 자식으로 삯바느질하며 살다 비슷한 처지의 남자에게 시집가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의 삶엔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 한순간도 없었다. 어머니뿐 아니라 딸인 버들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시집가 버리면 그만일 딸들은 부모와 남자 형제들을 위해 희생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었다. 20.

 

하와이에서 신부감을 찾기 어려웠던 남자들은 조선에 있는 젊은 신부들을 불러들였다. 남자는 가정을 함께 꾸릴 여자가 필요했다. 여자는 새로운 곳에서 일제를 벗어나는 자유이거나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가정 경제를 돕거나 배움을 향한 창구로 삼았다. 지금도 국내에서 가정을 구성하지 못한 남자들은 동남아와 같이 경제 격차가 조금 낮은 나라에서 여자를 데리고 온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 차이는 생활 수준에 격차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돈을 찾아 간다. 물이 흐르는 방향과 돈이 쫓는 사람이 찾아가는 방향은 반대다.

 

버들에게 홍주, 송화는 낯선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데 의지가 되는 친구가 된다. 고난에 처한 이에게 서로는 도움을 준다. 위로와 현재를 참을 수 있는 기둥이 된다. 상황이 불리하다 싶을 때 버들은 시기와 질투를 속으로 느낀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 좋은 사이로 지낸다. 둘이 보이는 애정을 소중히 받아들이는 송화는 헌신으로 그들을 대한다. 홍주는 솔직 담백한 성격으로 마음 속에서 커질 수도 있는 문제들을 꺼내놓는 방물장수같다. 그 둘과 어울려 버들은 속에서 생기는 시기, 질투를 인정한다. 버들은 두 가지를 하고 있다. 책임 질 수 없는 말은 하지 않거나, 하고 나면 책임을 진다. 그 흐름이 자녀가 성장해 대학에 보낼 때까지 흔들림 없다. 그래서 그녀 주위에 오래 된 인연이 계속 머문다.

우선 포와는 한자식 표현이며 진짜 이름은 하와이라고 했다. 원래는 하와이 왕국이었는데 이십여 년 전 서양인들이 여왕을 쫓아내고 미국 땅으로 만들었다. 낙원으로 알고 온 곳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과 같은 처지라니. 모두 놀란 눈이 됐다. 92.

 

일본을 피해서 찾아 간 곳은 자유가 펼쳐진 세상인 줄 알았다. 한자식 표현으로 포와, 하와이 농장은 미국 백인이 차지했고 농장주 백인들은 세금 감면을 위해 하와이를 미국 연방에 편입시켰다. 나라를 들어 조선을 일본에 바친 반민족 부역자와 닮았다. 

 

버들과 홍주는 어릴 때 옥화 모녀(딸 송화)에게 돌팔매질을 했다. 아이들이 죄의식 없이 하는 행위에 그 둘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와이에 와서도 버들과 홍주는 지난 과거가 생각나 가끔 괴로워한다. 그러나 사과는 없다. 송화는 둘에게 지난 피해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없다. 


영화 베테랑에서 조태오(유아인)가 말한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 그랬어요.” 판도라 상자를 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펄이 상자를 열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판도라는 열렸다. 판도라 상자 유래를 보면, 판도라가 열지 말라는 뚜껑을 호기심에 열었더니 그 속에서 온갖 재앙과 재악이 뛰쳐나와 세상에 퍼지고, 상자 속에는 희망만이 남았다는 그리스 신화라고 한다. 이후 인간은 온갖 불행에 시달리면서 희망만은 고이고이 간직하며 산다. 펄은 알게 된 출생 비밀을 집에 가서 말하지 못 한다. 그 순간에도 배려한다.

아스라이 펼쳐진 바다에서 파도가 달려오고 있었다. 해안에 부딪힌 파도는 사정없이 부서졌다. 파도는 그럴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살 것이다. 파도처럼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갈 것이다. 할 수 있다. 내겐 언제나 반겨 줄 레이의 집과 나의 엄마들이 있으니까. 396. 끝.

 

 
알로하, 나의 엄마들(양장본 Hardcover)
따스한 손길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 시대 선한 이야기꾼 이금이 작가의 장편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사진 한 장에 평생의 운명을 걸고 하와이로 떠난 열여덟 살 주인공 버들과 여성들의 삶을 그린 이 소설은 백여 년 전 일제 강점기 시대의 하와이라는 신선하고 새로운 공간을 배경으로, 이민 1세대 재외동포와 혼인을 올리고 생활을 꾸려 가는 여성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인 열여덟 살 버들은 일제 강점기 경상도 김해의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다. 아버지는 일제에 대항해 의병 생활을 하다가 목숨을 잃고 어머니 혼자 버들과 남동생들을 키워 냈다. 양반의 신분임에도 버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자 형제들과 달리 학교에 가지도 공부를 하지도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진결혼을 권하는 중매쟁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자
이금이
출판
창비
출판일
2020.03.25
 
이금이
직업
작가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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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
블로그, 공식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