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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uinaut

도가 말할 수 있으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이 이름 지을 수 있으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음이란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 있음이란 만물의 어머니다.
그러므로 늘 하고자 하는 것이 없어 그 미묘함을 보고자 한다. 늘 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 그 귀결점을 보려고 한다.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왔으나 이름을 달리하므로 그것을 함께 현묘함이라고 일컫는다. 현묘하고 현묘하여 온갖 미묘한 것들이 나오는 문이다.

 

노자를 생각하면 물이 떠오른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이다. 흐름과 맞아 떨어진다. 노자는 흐름 속에서 의미를 찾아 도를 말한다. 그리고 뜻을 가진다. 사람은 세상 만물에 이름을 지었다. 빛깔도 이름을 갖는다. 코어 핫 웜머 킬러 쿨 핑크처럼 난해한 이름을 붙여도 가진 이미지를 떠올린다. 모든 것은 이름만큼 한계를 갖는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딱 그 정도뿐이다.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를 더해 이름을 가진 사물을 수식한다. 

 

이름 없이 시작했지만 이름을 붙여 만물이 존재를 갖는다. 존재는 한계를 포함한다. 틀에 갇히게 된다. 묘함은 정의 내릴 수 없음을 이름한다. 묘함은 도와 같다. 이름을 갖는 순간 묘함이라 말하지 못한다. 도와 같다. 도를 말하면 도는 사라진다. 

 

노자 스스로 자기 부정이다. 도에 대한 글을 남겼지만 한계가 존재한다. 그만큼이다. 우리가 해석하고 도를 정의하면 이름이 대신한다. 상상하는 만큼 확장하지만 멈추는 순간 명사가 된다. 부족한만큼 형용사가 더해지지만 범위가 정해진다. 도라 말할 수 있으면 이제 도가 아니다. 

 

 
노자
버려서 얻고 비워서 채우다 『노자』. ‘도’와 ‘자연’ 그리고 인생을 이야기하는 도가 최고의 경전 《노자》를 ‘우리 시대의고전번역가’ 김원중 교수가 번역·완역한 것이다. 가장 널리 읽히는 통행본에 의거하면서도 한비의 주석을 비롯하여 왕필본, 하상공본, 백서본, 영락대전본 등 대표적인 판본들과의 비교 대조를 통해 적절한 자구를 선택하였다. 미묘한 해석의 차이를 보이는 경우, 대표적인 해석들을 함께 거론하면서 왜 《노자》에 다양한 해석본이 있을 수밖에 없는가 하는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하였다.
저자
노자
출판
글항아리
출판일
2013.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