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김훈 문체와 간결한 대화를 담고 있는 장편소설 하얼빈은 도마 안중근이 이토를 총으로 쏘아 죽인 후 재판과 사형을 당하는 시간과 장소를 이야기한다. 김훈은 다른 소설에서 냉혹한 현실을 짧은 문체로 담는다. 아름다운 자연을 함께 더해서 현실과는 다른 모습이 상상되곤 한다. 이번 장편소설에서는 자연 표현이 이전과 같지 않아 궁금했었다. 인터뷰에서 확인한 작가 대답에서는 ‘다녀오지 못 한 곳이라 적지 못했다’라고 했다. 개정이 필요하다 말한다. 안중근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토와 메이지 천황 미카도, 황태자 이은, 안중근 부인 김아려, 천주교 신부인 뮈텔과 빌렘. 그들이 등장해 각자 생각을 주장한다. 조선을 강탈한 일본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는 감정을 손가락 마디처럼 꺾이지 않게 분산시킨다.
안중근이 쏜 총에서 출발한 총알 세 발은 이토를 휘저었다. 안중근은 체포되고 이토는 이동되어 상태를 살폈지만 하얼빈역 철로 위에서 죽었다. 안중근은 수사와 재판을 받는 중에도 그가 죽었는지 누구에 의해 죽었는가를 알았는지 궁금했다. 이토는 범인 정체가 조선인이었다는 비서관이 전한 말에 ‘바보 같은 놈’이라 말했다. 하지만 왜 죽이려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전할 수 없었다. 이토는 이미 죽었다. ‘바보 같은 놈’이란 말에서 그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토는 문명개화로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고 발전시킨다는 주장을 펴야 하고 자신을 죽인 사람이 조선인이라면 응당 그 또한 주장이다.
안중근은 빌렘에게 세례를 받으며 본 빛을 아이 이를 들여다보면서 다시 보았다. 그 빛 속에서 들판을 뒤덮은 시체들을 생각했다. 안중근이 본 빛은 성스러운 것이며 절대자를 향한 것이다. 세례 중 존재를 느낀다. 아이에게서 생명을 본다. 삼남 시체에서 죽음을 본다. 빛은 탄생과 죽음이다. 빛에서 나와 땅에 서고 땅에 묻혀 빛으로 돌아간다.
안중근은 천주교 신자다. 사형을 선고 받고 뮈텔에 의해 종교를 부정당한다.
안중근은 자신에게 영세를 베푼 사제를 향해서 '국가 앞에서는 종교도 없다'는 황잡한 말을 하고 교회 밖으로 나가서 이토를 죽였는데, 황사영은 서양 군함을 몰고 와서 국가를 징벌해달라고 북경의 주교에게 빌고 있었다. 두 젊은이는 양극단에서 마주서서, 각자의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251.
안중근 의거 84년 후, 김수환 추기경이 공개사과와 추모미사를 진행했다. 살인으로 도마를 부정한 뮈텔을 뒤로하고 한국 천주교는 행위를 정당화했다. 황사영과 안중근이 살아낸 시대 배경이 다르다. 천주교가 처한 상황이 달랐고 억압하는 대상이 달랐다. 최선을 선택할 수 없다면 차선이다. 황사영은 순교자와 매국노 중에서 어디에 위치하는가? 지금 대한민국과 천주교 중에서 어디가 큰 범위인가?
안중근 일생을 다룬 글은 교과서부터 위인전, 소설까지 다양하다. 그는 김훈이 쓴 하얼빈처럼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토를 죽인 죄업을 단죄하는 일은 세속의 일이고 또 하느님의 일이기도 했지만, 이 판결은 인간의 땅 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안중근은 법정에서 법리적으로 깨달았다. 거기에는 뒤늦은 위안이 있었다. 위안은 따스하지 않고 차가웠다. 254.
이토를 죽인 후 일본제국 법정에서 받은 판결은 사형이었다. 조선 황실은 배후로 지목받을까 두려워 반역으로 취급하고 이토를 추모했다. 안중근은 악을 악으로 무찔러 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악은 처벌받았다.
도마야, 악으로 악을 무찌른 자리에는 악이 남는다. 66.
빌렘 신부는 안중근에게 교육사업에 힘쓰라 이야기한다. 안중근은 이토를 쐈다. 현재와 미래 이야기다. 둘 모두 소홀히 할 수 없다. 둘 모두 할 수 없다면 우선 순위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오답은 없어야 한다. 현재가 있어 미래가 있듯이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 현재는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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