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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category 글/책을읽다 2022. 11. 7. 11:25


시선으로부터 시작한 가계가 시작점부터 현재로 도착하면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331. 마지막 문단.

불편한 느낌이 많았다. 책 속 사이에 참혹한 역사를 다룬 흔적들이 보였다. 최근 읽은 책이 의도치 않게 아픈 이야기를 담은 책이 많아서 갑갑함이 이어졌다. 등장인물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특징이 여러 갈래로 뻗친다. 저런 가족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은 정세랑 작가가 공상과학 소설로 시작했다는 것으로 해소한다.

심시선은 군경에 의해 가족을 죽임 당하고 마지막 사진 신부 세대로 하와이로 이민한다. 예술가로 집착과 광기를 가졌으며 시선을 수집품 정도로 생각하는 마티아스 마우어와 함께 독일 뒤셀도르프로 간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으며 프랑크푸르트와 프랑스 파리로 거처를 옮기게 되고 남편 요제프 리와 한국으로 돌아온다. 시선이 여러 나라를 거치며 겪었던 역사와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시선은 세상을 향해하고 싶은 말과 글을 던졌다. 

정세랑 작가는 가족에게서 농담 하나와 비극 하나를 빌렸다. 여러 대륙에 사는 엄마 형제들에게 하와이에서 만나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농담 하나를 빌렸다. 한국 전쟁 중에 국군 손에 돌아가신 작은 할아버지에게 비극 하나를 빌렸다. 

책 속에는 남성 성에 대해 격하하거나 부정한다. 여성 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시기를 겪은 시선을 중심에 놓은 이야기다. 극복하고 자신을 드러내보인, 확장하고자 했던 이에 대한 반대급부가 크다. 자식 중 유일한 아들인 명준은 누나들과 여동생에게 놀림을 당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시선도 아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세상이 아들을 향할 때 딸들을 같은 위치에 놓기 위해 애쓰는 시선은 높임으로 낮추고, 낮춰서 높였다. 

역사를 군데군데 심어 뒀다. 한국전쟁, 적군이 아닌 군경에 의해 살해당한 가족, 사진 신부 이민, 예술 문화 속에 깔려있는 남성을 우월하게 보는 시선과 제국주의, 환경 보호를 위한 생태에 대한 관심, 사회에서 발생한 폭력과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불합리, 편견을 깨는 의식 전환이 많이 발생한다.

시선이 펼친 가족은 같으면서 다르다. 피를 타고 내려 시선이 흐르는 듯 하면서 남긴 조각이 달라 다른 형태로 발화한다. 서로는 독립되어 있으며 연결되어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상은 아니다. 오히려 특별한 사연을 담은 가족이라 예외성을 가진다. 가족이 모인 거실을 상상하면 공기 밀도가 빽빽하게 가득 차 있어 환기가 필요해 보인다. 

온 가족이 모여 있을 때 입을 벌리고 있으면 공기 중에 가득한 단어들이 시리얼처럼 씹힐 것 같았다. 169.

시선이 죽고 난 후 그녀가 말한 것을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명혜가 10주기 제사를 하와이에서 지내자고 했다. 가족은 이에 따른다. 제사에 올릴 것은 각자가 하와이에서 찾아온다. 함께 와서 각자 여행을 한다. 하와이에서 시선을 찾는다. 누구는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바닷가에서 서핑과 다이빙을, 커피와 팬케이크와 말라사다 도넛, 훌라 춤과 무지개, 화산석 자갈과 레후아 꽃, 그리고 할머니 이름이 붙은 산호 다섯 개가 바다에 심겼다.

 

 
시선으로부터,
독창적인 목소리와 세계관으로 구축한 SF소설부터 우리 시대의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나아가는 이야기들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로 우리에게 늘 새로운 놀라움을 선사했던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는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경미 감독, 정유미 주연)과, SM에서 제작중인 케이팝 드라마 〈일루미네이션〉의 각본을 집필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그가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로 돌아왔다. 『시선으로부터,』는 구상부터 완성까지 5년이 걸린 대작으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피프티 피플』 이후 4년 만에 내놓는 신작 장편소설이다. 『시선으로부터,』는 올해 3월 오픈한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서 3개월간 연재되었으며, 〈주간 문학동네〉 연재 후 출간되는 첫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시대의 폭력과 억압 앞에서 순종하지 않았던 심시선과 그에게서 모계로 이어지는 여성 중심의 삼대 이야기이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심시선과, 20세기의 막바지를 살아낸 시선의 딸 명혜, 명은,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손녀 화수와 우윤. 심시선에게서 뻗어나온 여성들의 삶은 우리에게 가능한 새로운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협력업체 사장이 자행한 테러에 움츠러들었던 화수는 세상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면을 설명할 언어를 찾고자 한다. 해림은 친구에게 가해진 인종차별 발언에 대신 화를 내다가 괴롭힘을 당했지만 후회하거나 굴하지 않는다. 경아는 무난한 자질을 가지고도 오래 견디는 여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뒤따라오는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자 한다.
저자
정세랑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0.06.05
 
정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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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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