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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친구

category 글/짧은글 2022. 11. 23. 09:23

사진 suinaut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네 명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전기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을 나왔다. 민성은 컴퓨터 공학으로 전공을 바꿨고 은호, 지민, 경호는 전기과를 다녔다. 민성은 한 학기만 학교를 다니고 군대에 갈 계획이었다. 민성은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려는 마음이 없다. 사람에 관심이 없다. 어떤 사건에 깊이 관심을 가지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새로 사람을 사귀지 않았다. 평소 어울렸던 사람을 만났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대학 생활을 함께 했다. 그들은 아침에 같은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해 해가 기울면 집으로 돌아갔다.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사회생활을 했다. 주말 빼고 매주 보던 친구들은 주말에 겨우 한 번 볼 수 있었다. 만날 수 있는 날은 점점 줄었다. 환경이 달라지면 자연스레 멀어진다. 한 달에 한 번, 분기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 보더니 일 년에 한 번 만나도 모두 모이기 어려웠다. 모두가 아는 이가 하는 결혼식과 돌잔치에서 만나는 사이가 됐다. 오늘도 다른 사람이 마련한 자리에서 넷은 만났다. 헤어지기 전에 커피 한 잔 하러 간다.

 

민성은 셋이서 하는 아내, 애기 이야기에 끼어들 수 없다. 민성은 제외한 셋은 카카오톡 프로필에 아내와 아이를 함께 찍은 사진이나 아기 사진을 걸어뒀다. 민성은 고양이 사진이 프로필이다. 화제를 돌릴 기회를 엿보던 민성은 지민이 마시는 콜라를 보며 말한다.

 "지민, 그거 제로 콜라야?"

 "아니, 그냥 콜라야. 제로 콜라 밍밍해서 맛없어"

 "제로 콜라 은근히 많이 팔린다던데? 마시는 사람이 많이 보여"

 

가족 얘기가 지나가고 넷 사이에 침묵이 잠깐 찾아왔다. 경호는 그 사이 휴대폰을 꺼내 외제차를 샀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민성이 뜬금없이 콜라 이야기를 꺼내 자랑을 더 하지 못해 불만족스럽다. 경호는 휴대폰을 소리 나게 내려두고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한다.

 "배가 그렇게 나와가지고 콜라가 들어가냐? 관리 좀 해라. 콜라에 그거 다 설탕이다."

 

대학 졸업까지 마른 편이던 지민은 술과 회식을 자주 한다더니 배가 점점 나왔다. 나오다 중력이 흐르는 방향대로 쌓이기 시작한다. 지민은 나온 배를 자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으며 대답한다.

 "이 나이 되면 이거는 인성이다. 너희들은 다 말라서 날카로워 보인다. 세상 부드럽게 살아라. 몸집 있는 남자가 듬직하고 세상 푸근해 보이는 거다. 이거 유지하려면 제로 콜라 가지고는 어림없다."

 

지민은 나온 배만큼 여유롭다. 경호와 은호는 몇 해 전에 아파트를 샀다. 실제 집 소유주는 은행이고 현관문과 작은 방 하나만 자기들 것이라며 농담을 했다. 빚을 지고 샀지만 둘은 등기부 등본에 적힌 이름을 보고 자신만만했다. 지민은 전세 집에 살고 있다. 집주인과 이해가 맞아 계약이 끝나도 이사하지 않는다. 그 기간이 십 년이 넘었다. 가진 차를 보면,  외제차나 국산 대형차는 아니지만 경차나 소형차는 아니어서 어느 곳에 가더라도 중간은 되는 차를 운전했다. 지민은 습관처럼 이야기했다.

 "남들 사는 중간만큼만 살아도 충분해. 나머지는 맛있는 것 먹고 가고 싶은 곳 가는 걸로 만족해. 이게 여유 아니겠냐? 한 번 사는 인생 빠득빠득 살고 싶은 생각 없다. 늙기 전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노후 걱정하면서 지금을 힘들게 살고 싶지도 않아. 내가 60, 70까지 산다는 보장 없잖아? 가는 데 순서 없다. 나는 그냥 지금을 살고 싶은 거다."

 

 "내버려두어라. 지 좋아하는 거 먹겠다는데 무슨 말들이 많아. 단 거 좋아하는 사람은 콜라 마시고 살찌기 싫은 사람은 제로 콜라 마시는 거지. 남들 사는데 이래라저래라 해 봤자 달라지는 거 없다. 그리고 사실 콜라나 제로 콜라나 큰 차이 없다. 기업이 마케팅으로 내놓은 상품에 혹하는 거지. 건강하려면 탄산음료 안 먹어야 말이 되지. 제로 콜라라고 뭐가 달라? 똑같아. 운동하고 식단 해야지. 의미 없다."

은호는 남 이야기하듯 한다. 맞는 말인데 애매한 말이다. 검정과 흰색 사이 회색이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공감하거나 위로하지 않는다. 답을 내놓는다. 은호가 이야기하면 대화는 끝난다. 

 

 "이 새끼 또 이러네. 너는 늘 그래. 친구 배가 저런데 충고 한 마디 안 하냐? 남들 아무 말 안 하더라도 친구들이 옆에서 말이라도 해줘야 관리하지. 너는 우리가 남이냐? 남 이야기하듯이 하네. 회색분자도 아니면서 지 할 말은 다하고 의미 없는 건 뭐야. 차이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의미가 있는 거지. 그거 안 좋은 성격이야."

경호는 애매한 것을 싫어한다. 이득은 선택해야 하고 손해는 피해야 하는 것이다. 이익을 얻는 이들은 올바른 사람이고 손해 보는 사람들은 멍청한 사람이다. 두리뭉실한 셋 중에 자기 의견이 확고하고 감정을 실어 이야기를 해 경호로부터 싸움이 시작되고 했다. 의견에 감정을 더하니 싸움이 일어난다.

 

민성은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듣는 입장으로 있었다. 은호와 경호로 이어지며 카페 테이블 위는 조금 날카로워졌음을 느꼈다. 민성은 주먹다짐하는 그들을 상상했다. 평소 걱정이 많던 민성은 몇 마디 말에서 결말을 떠올렸다. 

 "오랜만에 만나서 왜들 이러냐?"

 "민성이 저것도 저래. 늘 싸움은 다 붙여놓고 이야기할 만하면 그만하라지. 네가 제일 나빠"

 "어쩌겠냐? 결혼 안 해 애는 없지. 일상이 뻔한 녀석이라 할 말도 없을 건데 괜히 콜라 얘기했다가 이렇게 되는 거지."

 

대화를 또 끝내버리는 은호가 하는 말에 민성으로 향하는 화살은 힘 없이 땅에 떨어졌다. 지민이 남은 콜라를 한숨에 들이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머지도 휴대폰과 차키를 챙기고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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