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대 끝자락에 있는가?’라고 느낀 적이 있었다. 또래 집단과 다른 생각을 하고 행동을 했다. 그 생각과 행동은 충분히 틈을 만들었다. 또래 집단은 비슷한 생각과 행동으로 형성된다. 다름은 집단에 속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건이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은 지금도 계속된다. 다음 혹은 그다음 세대 특징을 묘사하는 방송과 책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즈음이다.
매년 김난도 교수와 여러 공동 저자는 코리아 트렌드를 출판한다. 회고와 전망으로 나눠서 글을 쓴다. 전망에 속한 이야기를 읽으면 공감하며 희망했다. 현실은 회고만큼 나아가지 못 했으나 변화는 언젠가 온다. 이 글을 쓰면서 ‘앞서 나가는 선구자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앞서 나감은 이미 존재하는 방식을 변경하거나 새로 만든다. 이런 진보를 스스로 할 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니 그 생각은 틀렸다.
경제 자유. 경제에서 자유를 느끼고 싶어서 경제와 경영을 공부했다. 2000년대 중반 펀드가 유행했지만 그 이전에 펀드를 시작했다. 경제 신문과 잡지, 경제와 경영 서적, 유명 경영자가 쓴 자서전과 평전, 재무제표를 포함한 회계와 같은 책들을 급히 읽어치웠다. 넓은 범위에서 시작해서 분야별로 깊이 들어갔다. 채권, 금리, 환율, ETF, 보험, 주식, 각종 금융 상품들에 관한 책을 읽으며 투자 가능한 분야를 압축했다. 워렌 버핏과 찰리 멍거, 필립 피셔, 피터 린치, 존 보글 같은 투자 스승을 얻었다. 많은 이들이 원하는 것처럼 자본가가 되고 싶었다.
경제 자유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 보다 뜨거웠던 시절이다. 불꽃을 피우고 지고 있다. 많은 유동성은 대부분 자산 가격을 올렸고 금리 인상은 내리고 있다. 흔들림 후에도 경제 자유에 대한 욕구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인스타그램에서 무지출 챌린저가 불과 몇 해 전 유행한 욜로를 대신하고 있다.
출근 공포. 잠들기 위해 누우면 잠이 안 왔다. 지나서 생각해보면 출근에 대한 공포심이었다. 출근해서 어떤 공포가 생기는 일상이 아니었다. 잠을 쉽게 자지 못 했다. 현상이 생기면 원인을 찾는다. 원인을 찾기 위해 여러 생각이 나타난다. 여러 생각은 세세한 가지를 쳐 잡다한 감정을 부른다. 그렇게 잠은 도망간다. 출근을 하지 않게 되자 잠을 잘 잤다. 그러다 잠자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많아졌다. 대신 불안감이 찾아왔다. 공포심과 불안감.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통화 공포. 얼마 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그림을 봤다. 업체에 전화 연락을 하라는 상사와 메일과 문자로 연락을 하는 신입사원을 그린 짧은 그림이다. 벨소리가 울리면 가슴이 덜컹거리며 어깨가 들썩거렸다.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해 긴장이 온몸을 딱딱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전화를 거는 건 수월했다. 하고 싶은 말을 짧은 글로 남겨 두고 대답을 예상해 흐름을 간추려 둔 후 전화를 건다. 겨우 용건만 전하기에 충분했다. 나아지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 했다.
워라밸. 성인이 되고 첫 번째 직장은 집에서 한 시간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살고 있는 경계지를 지나가야 했다. 근무 시간과 일상화된 잔업, 그리고 고객 응대를 위한 대기 시간을 포함하면 13시간 회사에서 머물렀다. 이동 시간과 준비시간을 포함하면 17시간을 일을 위해 썼다. 나머지 시간은 잠만 자기에 충분치 않았다. 두 번째 직장은 이층 침대가 있는 곳이었다. 이때 도망갔어야 했다. 잠자는 시간에도 회사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과 생활에 균형은 없었다. 일만 있었다. 그런 이유였을까? 직장을 구하는 조건에 근무 시간이 첫 번째 항목이 되었다. 지금이라면 주 30시간이라면 그럭저럭 균형을 맞춰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 40시간 근무로 운영되는 기업이 주변에 흔하지 않지만 희망한다. 변화가 내게 오기를.
직구. 노키아, 소니 에릭슨, 넥서스, 픽셀. 휴대폰 브랜드다. 변화에 못 이겨 사라진 브랜드와 최근 사용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휴대폰이 아니다. 어떤 제품은 국내 정식 발매가 없어 직구로 구매했다. 바야흐로 세계가 하나로 연결됐다. 전자상거래와 유통망 발전으로 어디서든 어느 곳으로 어떤 상품이든 주문할 수 있다. 그 이전에 직구가 있었다. 배송대행지로 물건을 보내고 관세청에서 세금을 납부해서 택배나 우체국을 통해 배송 받았다. 그 이전에는 보따리 상이나 지인 찬스가 있었다.
끝이었는지, 처음이었는지 알 수 없다. 미래를 적어놓은 책을 통해 길들여졌을수도 있다. 가지고 태어나서 자란 성향이 우연히 지금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예전보다 현재에 익숙함을 느끼고 만족스럽다. 오지 않은 미래를 더디게 온다 타박하며 기다린다.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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