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끝까지 갈 사람

category 글/짧은글 2022. 11. 16. 10:53

 

2022년 12월은 주택임대차 계약 종료일이다. 걸어서 십 분이면 광역시와 연결되는 전철역에서 집까지 도착할 수 있다. 역세권이다. 도로를 건너면 전철역이다. 대로가 사이에 있다. 차를 타고 근처 대도시와 광역시로 이동이 쉽다. 대로는 공원을 만나 양갈래로 나뉜다. 두 길 중 한 방향은 광역시를 향하며 다른 방향은 대도시로 갈 수 있다. 한 길 대로를 북으로 방향하고 두 갈래길이 좌우 대각으로 내려가며 공원은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위치한다. 공원은 호수를 품고 있다. 못으로 불리며 물이 괴어 있던 곳이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들고 분수를 설치했다. 나무와 꽃을 심고 가꾸어 조경에 힘을 주었다. 공원에 마련된 여러 갈래 길에서 산책하는 사람과 강아지, 뛰는 이들이 서로 마주치며 지나간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원이 되었다. 주말이면 공원을 접한 도로 한 차선은 주차장으로 변한다. 그럴 때면 주차 단속을 일시 미룬다. 집은 산으로 기우는 언덕에 있다. 창가에 서서 산 반대편을 쳐다보면 다른 산으로 가려지는 곳까지 시선이 뻗친다. 산과 산 사이는 평야다. 중간 불쑥 튀어나온 건물 몇몇에 심심함이 덜하다. 이곳에 2년 전에 전세 계약을 하고 들어왔다. 내 집을 갖기 직전 단계로 마지막 전세다. 어느 조건 하나 빠지지 않는다. 부동산을 통해 돈을 벌 생각은 없었다. 보증금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최적 조건을 찾고 싶었다.

 

매매가 3억 5천만 원에 거래되는 곳이다. 전세 보증금은 2억 6천만 원으로 시세 대비 74%에 해당한다. 등기부등본에 근저당과 같은 담보 설정, 특이할만한 권리 내역은 없었다. 전세권 설정 등기를 해놓아 경매에 넘어가는 상황이 오더라도 돈을 우선으로 돌려받는 1순위가 된다. 2020년 코로나가 세상에 알려졌다. 국가 간 국경이 닫혔다. 국내에서도 이동이 제한되었다. 증시는 수직으로 그래프가 꺾였다. 6월이 되어 이전을 회복했고 그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상승했다. 부동산은 영끌 - 영혼까지 끌어모아 - 붐이 불면서 시세가 폭발했다. 계획보다 높아진 보증금으로 계약해서 속이 쓰렸다. 집주인에게 건네 준 보증금은 이 집을 갭 투자하는 데 필요한 자금이 되었을까. 다른 집을 한 채 더 사기 위해 더해졌을까. 전세 제도는 계약 기간 동안 보증금에 대한 투자 수익과 이자를 포기해야 한다. 그 권리를 집주인에게 양보하고 집을 빌리는 행위다. 다시 돌려받을 수만 있으면 된다. 위험을 안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확인 가능한 것은 없다. 집주인이 하는 투자 행위를 조사하거나 증빙받을 수 있는 서류는 어느 관공서에서도 발급받을 수 없다.

 

부동산 투자 바람이 너무 거세어, 지나치다. 투자 바람 날갯짓 한 번에 멀리 날아가듯 신축 아파트 분양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분양가는 늘 이전 금액을 뛰어넘었다. 이 도시에서 대부분 흥행하던 이름을 단 아파트 분양이 곳곳에서 이뤄졌다. 인플레이션 소식이 들려서일까. 분양가가 두 배로 뛴 곳이 등장했다. 지인에게 처음 들었다. 모임에서 대화 소재로 등장했다. 이전에는 아파트 분양이 대화 소재로 이야기 하지 않던 이가 이번에는 신청을 했다. 프리미엄을 거론한다. 분양가가 너무 높지 않아요? 인플레이션으로 자재 값이 올라서 그래요. 그 브랜드가 원체 집을 잘 짓잖아요. 감안해도 높은 것 같은데요? 프리미엄만 받고 팔 거예요. 그 브랜드를 가진 아파트는 전국에서 최상위는 아니지만 이 도시에서는 최고 가치로 인정받았다. 높은 가격에 일부만 포함되었을 근거였다. 이자를 부담스러워하는 이는 접수를 하지 못 했고 분양사무소 근처에도 가지 않은 사람에게 분양 영업을 위한 연락이 왔다. 좋은 매물이 있으니 접수하라. 그곳은 미분양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부동산 위험 신호를 알리는 언론 기사가 하나 둘 눈에 띄었다. 그리고 쏟아졌다. 미국이 기준 금리를 계속 올린다. 환율도 따라 올랐다. 신축 아파트 미분양 소식은 어느새 당연해졌다. 신축 건물을 짓는 데 자금 유통을 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에서 현금이 부족하다 했다. 나쁜 뉴스 투성이었다. 그래서 아파트 분양 신청을 미뤘다. 이번을 잘 피해 가면 조금 더 싼 가격에 내 집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전세 계약을 연말로 끝내고 작은 규모로 월세를 구해 1년 정도 버틸 생각을 한다. 집주인에게 의사를 전했다. 연장할 생각은 없다. 집을 비우겠으니 보증금을 돌려달라. 집주인 대답에 세워두었던 계획은 움찔거렸다. 돈이 없어 보증금을 당장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계속 살거나 집을 사라. 

 

대한민국에서 집을 빌려 사용하는 방법으로 전세와 월세가 있다. 둘을 한데 버무린 반전세가 있다. 전세로 집을 빌리면 보증금을 집주인에게 맡긴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다. 보증금 돌려받기는 항상 수월하지는 않다. 집주인은 보증금을 매매에 사용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새로운 입주자에게 보증금을 받아 돌려준다. 부동산 시세 오름세와 입주자를 구하기 쉬울 때에는 문제 발생이 적다. 모두가 하는 생각이 비슷하다. 갭 투자 성행으로 전세 보증금과 매매 가격은 맞닿기 직전이다. 매매 가격은 내려가고 전세 보증금이 더 커지게 된다. 흔히 말하는 깡통 전세가 되었다. 집주인은 매매 가격보다 높은 전세 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 집이 필요한 사람은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게 됐다. 내놓은 집은 거래가 되지 않고 세입자는 구해지지 않는다.

 

급급매로 시세 대비 50% 정도 낮춰 내놓은 매물만 거래가 된다. 지난 부동산 투자 열풍에 인기가 많았던 수도권에서 절반 시세 거래가 생겼다는 기사가 있다. 떨어진 금액은 오름세를 타기 전 가격보다도 아직 높다. 급격한 오름세를 겪어서 절반으로 내려가더라도 이전 소유주들에게는 손해가 해당되지 않는다. 다른 광역시 신도시에서도 비슷한 뉴스가 올라왔다. 입주민은 일상 거래가 아니며 특수 거래가 의심된다는 인터뷰를 했다. 매매 한 세대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고 불법에 해당하는 거래일수 있으니 수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그들 바람과는 다르게 비슷한 금액에서 거래가 또 이뤄졌다. 매물은 팔릴만한 금액인 급급매로만 쌓이고 있다. 그 금액은 시세가 될 것이다.

 

집주인에게 다시 연락한다. 이 집을 사고 싶지 않다. 계약을 종료하고 싶다. 집주인은 집을 매물로 내놓겠다고 한다. 최근 거래를 알아보니 매매 가격 2억 6천만 원에 전세는 2억 1천만 원이다. 집 값이 전세 보증금과 같다. 집주인은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돌려주면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없다. 같은 아파트 매물을 살펴본다. 1~2천만 원이 더 적은 매물이 보이고 5천만 원 낮춘 급매가 보인다. 쉬이 팔릴 것 같지 않다. 한 달이 지났다. 집주인으로부터 소식은 없다. 부동산 사무실 유리창에는 매물가를 A4용지에 인쇄해 지나가는 행인을 볼 수 있게 붙여있다. 지나가다 고개를 돌려 창을 바라보다 걸음을 멈춘다. '급'이 적힌 인쇄물이 늘었다. 순서를 달리해서 금액을 낮추고 있다. 살고 있는 아파트 매물 가격도 그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있다. 집주인이 내놓은 집을 나타내는 동수와 호수를 찾는다. 새로 인쇄를 잊은 건지, 다시 붙이지 못한 것인지, 처음에 안내된 정보들 그대로다. 같은 아파트와 금액 차이가 나고 있다. 팔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빌린 집이 깡통 전세가 되었다. 받을 금액보다 집 매매가가 낮다. 집주인은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려면 집값에 자기 돈을 더해서 줘야 한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실행시켜 깡통 전세 사례를 살펴본다. 본인 돈 없이 매매가보다 높은 전세 보증금을 설정했다. 받은 보증금으로 다른 빌라를 매입했다. 매입 한 빌라를 통해 얻은 보증금은 또다시 빌라 매입 대금으로 쓰였다. 무자본갭투자라 불렸다. 이 순환 과정으로 수백 채를 매입했다. 연결 고리 중 하나가 끊기면서 연결된 순환은 피해자를 만들어 냈다. 계약 순간부터 깡통 전세다. 그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앞으로 깡통 전세에 관련된 사건들이 지속 발생할 예정이라는 우울한 소식에 뉴스를 닫는다.

 

깡통 전세 상황에 놓이게 된 많은 이들이 맞은 결말은 달랐다. 모두 돌려받았거나 일부를 받거나 가해자가 입건되고 돌려받을 수 있는 대상이 사라졌다.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는다. 내용 증명과 경매, 민사 소송 같이 삶을 살면서 나와는 관계없을 법한 단어들을 접한다. 경매에 넘어가게 되면 입찰가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몇 번씩 유찰을 거치게 되면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줄어든다. 이후는 압류와 민사 소송으로 지루한 시간 싸움을 해야 한다. 외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방 세 칸짜리 집을 가지고 싶었는데 타인과 다퉈야 한다. 성공한 이야기를 보며 위안을 얻고 안타까운 사연에 공감되어 우울감으로 몸을 처지게 만들었다. 집주인과 나눴던 이야기들은 문자로 남겼다. 증명할 수 있는 건 기록뿐이다. 있었던 사실을 글로 남긴다. 날짜와 시간을 인위로 조작할 수 없는 이메일을 이용한다.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이 같은 이메일을 보낸다. 방금 보낸 이메일은 편지함에 곧 들어온다.

 

내용 증명을 보내자 전세금이 입금되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를 상상했던 터라 맥이 풀렸다. 집주인은 보증금을 마련했다. 이야기만 주고받았을 때 그는 이야기만 했다.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았다면 집주인도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절차를 시작하는 첫 단계를 했을 뿐이다. 그는 그것에서 어디까지 읽은 걸까. 법은 사람들 사이에서 조율되지 못한 일을 마지막으로 판단을 맡기는 수단이다. 인정을 바랄 수 없고 글로 쓰인 법전에 기대 사람인 판사가 결정을 내린다. 법을 이용하는 수단이 목적으로 변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양보하고 조율하던 일들은 시작부터 법에서 다툴 유불리를 따졌다.

 

집주인은 본인 집에 머물고 있는 세입자를 끝까지 갈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끝을 냈다. 행동 시작에서 결론을 얻었으니 더 이상 진행할 일이 없다. 다른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맡겨야 한다. 

' > 짧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적당하지 않다  (0) 2022.12.29
다시 보는 메모가 기록이 된다  (0) 2022.12.28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음  (0) 2022.12.20
흔한 친구  (0) 2022.11.23
숨 쉬세요오오오  (0) 2022.10.26
한자 공부에 진심 인 엄마  (0) 2022.10.24
세대 바뀜  (0) 2022.10.20
그러려니  (0) 2022.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