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한자 공부에 진심 인 엄마

category 글/짧은글 2022. 10. 24. 17:26


엄마는 한자 교실에 다닌다. 주민자치센터에서 진행하는 수업에 참여한다. 일주일에 한 번 간다.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수업한다. 기존 수강생들은 자격증 2급을 취득한 사람들이라 실력 차이가 많다며 투덜댄다. 그래서인지 한자를 쳐다보는 시간이 많다. 한자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처음 보는 단어 밑에는 샤프로 쓴 뜻과 음이 적혀있다. ‘돌아서면 왜 까먹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드러낸다. 그런 맛으로 공부하는 거라고 돌아서면 까먹고 다시 보고 까먹고 그러다 기억하는 거라고. 

오래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맞았다. 늘 바쁘게 살았다. 자투리 시간에는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었다. 집 안에 먼지 쌓일 틈이 없었고 직접 껍질 벗기고 다듬어 양념을 묻힌 반찬이 냉장고에 쌓였다. 하루 동안 가장 긴 시간을 보내 던 장소와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일상에 시간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하릴없는 처지가 되다보니 텔레비전과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시간 지나 말이 없으면 자고 있었다. 그런 엄마에게 운동과 교양 강좌를 소개했다. 주변에 관공서들이 있어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운동을 꾸준히 하더니 이번에 한자 수업을 등록했다.

첫 수업을 다녀와서 참석자들이 가진 특성에 대해 늘어놓았다. 오랜 교직 생활을 퇴직한 교장 선생님과 같은 수업을 듣는다. 한자 수업을 꾸준히 들은 사람들은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너무 높은 수준에 당황스럽다. 가져 온 참고서는 한자 부수를 바탕으로 여러 단어가 적혀있다. 나열한 단어에는 음과 뜻이 없어 엄마는 곤란했다. 두 번째 수업을 다녀오더니 한자 사전을 샀다. 얇은 옥편 넘어가는 소리가 쉼 없이 들렸다. 

학창 시절에 나는 사전으로 글 찾는 것을 귀찮아했다. 국어와 영어 사전은 단어 형상을 외우기라도 하니 사전만 보며 찾았다. 그러다 예상 못한 단어를 만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한자는 어떻게 생겼는지 단어에서 눈을 떼면 기억에서 지워졌다. 그래서 한자와 사전을 번갈아 보며 찾아야한다. ‘엄마도 같겠지’ 짐작하며 스마트폰으로 한자 사전 앱을 하나씩 깐다. 뜻과 음을 넣어서 검색하는 사전은 탈락이다. 글을 그려서 찾는 앱은 삭제된다. 그러다  카메라로 찍어서 인공지능이 글자를 인식해 찾아주는 녀석을 발견했다. 쉽지 않게 엄마에게 사용법을 알려줬다. 여전히 ‘인식 안 되는 한자가 있다’며 불편을 토로하지만 사용이 되긴 하나 보다. 한자 사전 위치가 그대로다.

한자를 쓰기 위해 집에 있는 필기 도구를 한 번씩 손에 쥐었다. ‘샤프는 얇아 맛이 안 난다. 붓 펜이 서예 하는 느낌까지 더해져 좋다’며 책장에 있던 붓펜을 가져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위치에 놓여 있다. 연필로 쓴다. 서걱서걱. 이면지에 쓰고 한자용 공책에 쓴다. 엄마가 거실에 자리를 잡는다. 한자 교재와 공책이 펼쳐진다. 손에는 연필을 쥔다. 텔레비전이 켜졌다. 유튜브를 재생한다. 한자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등장한다. 선생님은 매번 달라진다.

어느 날 메모와 펜을 가지고 물어왔다. 엄마 성씨를 한자로 쓰면 이렇다. 그런데 유튜브에서는 다른 것이라고 한다. 한자 사전 앱을 통해 엄마 성씨를 찾았다. 유튜브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가족들이 한자를 쓸 때 모두 이렇게 썼다. 관공서에서 한자를 쓸 때도 이렇게 쓰면 아무 말 없이 사용 가능했다’라며 투덜댄다. 

' > 짧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음  (0) 2022.12.20
흔한 친구  (0) 2022.11.23
끝까지 갈 사람  (0) 2022.11.16
숨 쉬세요오오오  (0) 2022.10.26
세대 바뀜  (0) 2022.10.20
그러려니  (0) 2022.10.19
만조국 미국  (0) 2022.10.17
삶을 관통하는 주요 단어  (0) 2022.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