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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세요오오오

category 글/짧은글 2022. 10. 26. 17:22


얼마 전 병원을 다녀왔다. 건강 검진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진행하는 정기 검진이다. 내시경 하는 동안 조직 검사를 두 건 진행했다. 특별히 이상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위염이 있는데 만성이다. 암과 혹으로 발전할 수 있다. 약을 먹어도 완치되지 않는다. 생활 습관을 고쳐야 하며 자주 내시경을 해야 한다.

약 먹기와 주사 맞기, 특유한 소독 냄새가 싫어 병원 가기를 꺼린다. 어릴 때 입원한 기억이 유쾌하지 않아 다른 사람보다 유별나다. 진통제를 달라고 떼썼다. 지금이나 어릴 때나 고통 참기에 재능이 없다. 약을 먹으며 치료하기 위한 통증을 약 기운이 압도해서 새로운 고통이 이겨버린다. 약 처방할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괜찮아질 때까지만 약을 먹거나 장기간 먹어야만 하는 경우가 아니면 처방전을 거절한다.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면 처방전은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병원은 늘 사람이 많았다. 검진을 위해 찾은 병원에는 예약이 되지 않았다. 선착순으로 접수를 받았다. 외래나 입원 환자들이 검사를 위해 대기했다. 둘러보면 대부분이 건강검진을 위해 기다렸다. 양 옆 검사실을 마주 보고 통로 가운데 의자에 앉아 간호사가 부르는 이름에 귀 기울인다. 검진이나 외래 환자는 일상복, 입원 한 사람은 환자복 그리고 환자복 같은 가운을 걸친 사람으로 구분된다. 남는 시간이 많아지면 소일거리를 찾게 마련이다. 누가 언제 왔고 언제 이름을 불렀는지. 내 차례는 언제쯤 될 것인지. 그 과정에 환자복 같은 가운을 걸친 사람이 눈에 띄었다. 검진센터 실장 명찰을 한 직원이 그들에게 왔다 갔다 했다. 슬리퍼가 불편하지는 않은지. 몇 사람 뒤에 검사를 받을지. 여기서 기다리면 된다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남는 시간이 없었다. 휴대폰을 조금 보다가 불려 갔다. 가운 입은 사람이 늘 때마다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짜증과 자본주의, 둘 사이에 짧은 논쟁이 벌어졌다. 

이제 엑스레이와 내시경만 남았다. 진단방사선과에서 대기하던 중 이름이 불렸다. 
– 외투 벗으세요.
– 목걸이 빼야 하나요?
– 네. 빼세요.

짧은 안내 후 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 숨 크게 들이마시고오오오오오
– 참으세요오오오오오
– 숨 쉬세요오오오오오
– 끝났습니다

대상이 다른 사람이었을 때에도 그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을 거다. 인식하지 못 한 잡음들과 섞여 다른 귀로 빠져나갔다.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동사에 대한 대상이 내가 되니 네 개 문장이 가진 단어와 운율이 느껴졌다. 내시경 대기실이 바로 옆이었는데 그동안 몇 번씩 반복되는 소리를 들으며 따라 한다. 유치하게. 내시경 침대에 누워 자세를 잡고 수면유도제를 투여하는 동안 그 소리가 그리웠다.
– 옆으로 완전히 누구시고요오오오오오
– 잘 주무시고요오오오오오
– 끝났습니다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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