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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 과학 소설. ‘시간과 공간의 테두리를 벗어난 일을 과학적으로 가상하여 그린 소설. 유사어로 과학 소설, 에스에프가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에서 설명하는 공상 과학 소설 정의다. 공상 과학 소설 계보를 잇는 작가로 김초엽을 꼽는다. 작가는 단편으로 공상 과학 소설을 썼다. 단편은 문장과 문단 사이에 공백이 생겨 상상력을 자극한다. 소재 중 공상 과학은 그 자체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단편과 소재가 만나 상상이 나래를 편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단편 7편으로 구성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유토피아에 대한 주제로 썼다. 서로 갈등이 없으면 행복 할 수 있는가? 갈등과 차별은 있지만 사랑이 존재하면 그곳이 유토피아일까? 갈등과 차별을 제거한다면 다른 것들도 함께 사라진다. 시초지와 마을. 어느 한 곳이 유토피아 일 수 있다. 성년식에 시초지로 떠난 이들은  시초지와 마을 중 한 곳을 선택한다. 되돌아가거나 머무르거나 정한다. 혹은 두 곳 모두 유토피아가 아니다.

유토피아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의 서쪽에서, 탁현민


스펙트럼.
루이는 희진을 보호하는 외계인이다. 루이는 짧은 생을 마치고 계승된다. 유해를 담은 토기를 강에 실어 보내고, 건너편에서 어린 개체가 뗏목을 타고 건너온다. 어린 개체는 루이가 된다. 희진이 머무는 동안 루이는 여러 번 바뀐다. 새로 온 루이는 이전 루이들이 남긴 그림을 보고 희진을 이해한다. 루이는 역할이다. 기록을 읽고 남기는 자다. 집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역할은 계승되어야 한다. 루이는 이름이 아니라 위치다. 루이는 최상단 동굴에 머문다. 그는 왕이다.

루이는 의미가 담긴 언어를 색채로 표현한다. 희진 눈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단계로 색채를 나눈다. 그들이 보는 풍경에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상상을 더해 보아도 머릿 속에 떠올리기조차 어렵다. 우리가 보는 노을 속 연한 주황엔 ‘따뜻함’이라는 단어가 써져 있다. 색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단어로 대신한다. 그렇다면, 글자가 없어져도 좋다. 어린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치기 위해 단어를 알려준다. 단어와 그림을 함께 제시해 서로를 연결한다. 글자가 없어져도 괜찮다면 따뜻한 숲과 위험한 숲을 색채로 표현할 수 있다.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면 많은 과정이 생략된다.


공생가설.
당신은 7세 이전 기억이 뚜렷한가? 류드밀라. 충돌로 없어진 생명체가 살았을 법한 행성. 7세 이전 뇌 속에 공생하는 존재로 그들은 이후 다른 개체로 옮겨간다. 로봇에 의해 양육되는 상자 속 아이들에게는 발견되지 않는 것을 보면 전염병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로 이동한다. 어른이 되면 류드밀라에 대한 그리움 같은 감정만 남는다. 그들이 류드밀라 마르코프가 그린 류드밀라 행성 그림에서 알 수 없는 감정과 그리움을 느끼며 눈물 흘리는 이유다.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실은 외계성이었군요." 129.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안나는 슬렌포니아에 도착할 수 있을까? 안나는 여전히 딥프리징으로 냉동되고 깨어난다. 그것이 정류장 철거를 위해 온 직원 우주선이 아닌 본인 우주선으로 떠난 이유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수명을 늘리면 된다. 속도와 걸리는 시간은 반비례한다. 소요 시간을 늘리면 속도가 느려도 도착할 수 있다. 


감정의 물성.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214.

기쁨과 같은 긍정 감정 뿐만 아니라 외로움 물성을 사용하는 이들에 대한 기업 대표 인터뷰이다. 유토피아 내용을 담은 <<순례자는 왜 돌아오지 않는가>>처럼 우리가 가진 것에서 어느 한 부분만 제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관내분실.
단편 7편 중 가장 가까운 미래라고 생각한 작품이다. 마인드는 사람 뇌를 스캔한 데이터를 도서관에 보관, 열람하는 것이다. 우리 장례 의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해왔다. 무덤에 매장하는 장례 의식에서 화장 후 유골을 죽은 이를 기억할 수 있는 물건과 함께 추모관에 보관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잊힐 수 있는 권리와 기억할 수 있는 권리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엄마 김은하는 마인드 되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 인덱스를 삭제한다. 딸 지민은 관내 분실된 엄마를 찾기 위해 그녀가 남긴 유품과 행적을 찾는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재경은 바닷속에서 우주를 찾았다. 가윤은 우주에서 터널을 통과한다. 그 둘은 같은 우주에 있다. 개조 된 신체를 가지며 마음이 더 커졌다. 더 커진 마음으로 공허함 속에 머문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양장본 HardCover)
바이오센서를 만드는 과학도에서 이제는 소설을 쓰는 작가 김초엽.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상상의 세계를 특유의 분위기로 손에 잡힐 듯 그려내며,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끊임없이 질문해온 그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관내분실》로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대상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가작을 동시에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저자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신인소설가로서는 드물게 등단 일 년여 만에 《현대문학》, 《문학3》, 《에피》 등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한 작품으로 펴낸 첫 소설집으로, 근사한 세계를 그려내는 상상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던지는 일곱 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저자
김초엽
출판
허블
출판일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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