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당신의 서쪽에서, 탁현민

category 글/책을읽다 2022. 10. 14. 18:43

지나가는 차는 없지만 바다는 있지. 사진 suinaut.

 

 

탁현민. 공연 연출가,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로 작가를 소개한다. 그를 문재인 정부 의전비서관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다. 정치 논쟁에서 그는 자주 소환된다. 이전 정부에서 비서관으로 수행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초판 1쇄 펴낸 날이 2014년으로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선이 실시되었으니 그 이후 경험이지 않을까 추측할 수 있다. 이전 출간 한 책인 2013년 <흔들리며 흔들거리며>를 읽어보면 대선 충격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감정들이 느껴졌다. 그 책에서 그는 파리에 있었다. 일 년 후 제주 서쪽에 있다. 후유증은 많이 덜어 내어 보였고 제주에서 여유와 일상을 되찾는다. 제주에서 누린 생활이 제주에서만 가능할까? 탁현민은 제주에서 느낀 일상을 서울 생활로 공감하고자 한다. 

“어디서 사느냐보다 어떤 삶을 사느냐가 더 중요하듯 무엇을 보았는지보다 무엇을 보려고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자서에 쓴 글를 보며 그는 제주도 풍경을 서울에서도 본다. 성숙한 한 인간 내면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그래. 마음이 일렁이면 어디든 바다다."

비슷한 나이대로 쓰인 글을 같은 세대에 이르러 읽어 본다. 그래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있는 대목들이 더러 있다.

제주에서 여름을 보내고, 이제 매주 제주에 내려가게 되면서 나는 가끔 "마흔에 제주를 만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운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곤 한다. 아마 내가 제주를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다소 심심했을 것이고, 더 늦게 만났더라면 많이 후회했을 것이다. 


20대와 마흔 즈음에 제주를 찾았었다. 20대의 새로움이 마흔 즈음엔 익숙하고 심심하던 시간은 한적한 여유로 바뀌었다. 일주일 이상 시간을 갖고 하루 한 두 일정만 계획해 방문했던 제주는 시간이 남게 마련이다. 차를 빌리지 않고 두 발과 버스로 옮겨 다녔다. 숙소가 있던 안덕면 사계리에는 버스가 들어온다. 배차 시간표가 빼곡 하진 않지만 1시간 단위로 다녔던 것 같다. 배차된 모든 버스가 가까운 정류장에 들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한 번은 다른 노선으로 또 다른 한 번은 사계리로 왔다. 그렇다면 2시간에 한 대씩 버스가 온다는 말이다. 그 말인즉슨 시간표에 맞춰 나가지 못해 버스를 놓치면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정처 없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도로를 보고 있으면 지나가는 차량이 많지 않다.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풍경 구경하는 게 다다. 멍한 상태다. 멍 때리지 못하는 그때는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그래도 뭘 하겠나? 제주는 삼사일만에 강박을 날려 보냈다. 기다림을 의식하지 않는 그냥 지나가는 시간을 즐긴다.

상대가 없어 연애를 못 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의심해봄직하다. 연애는 의지 반, 운명 반이다. 그나 그녀를 만나는 것은 운명으로 되는 것이고, 그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의지가 필요한데, 그 의지라는 것은 노력에 앞서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신의 감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평소 입버릇처럼 하던 상대가 없어 연애를 못 한다는 말은 반은 의심해볼만하다고 한다. 그러나 운명이 먼저이고 의지는 뒤따라 오는 것이다. 다가오지 않은 운명에 의지를 다할 기회는 없다. 가장 잘 통하는 변명을 못 쓰게 만들 순 없다. 주변 질문들에 이만한 답변은 없다.

이 책에는 탁현민이 제주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 한 경험들이 녹아있어 재미있다. 

"근데 말이야. 여기 슈퍼는 왜 내가 물건을 사면서 늘 미안한지 모르겠어. 꼭 얻어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지."
어느 날 달숲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효주에게 이야기했더니 웃으며 "거기 물건도 몇개 없는데, 그거 가져가니까 그렇죠"한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내가 미안했던 거구나."

떠나기 얼마 전, 담배를 사러 금능슈퍼에 가서 피우던 담배 4갑을 사며 만원짜리를 드렸더니 거기 할망이 두 갑만 내어주며 말했다. 
"이거 네 갑 남았는데 니가 다 사가면 다른 사람은 어쩌라고. 담배 태지 말라고?"
"아, 죄송합니다."
뭐 그런 곳, 그런 사람들,

 

 
당신의 서쪽에서
[당신의 서쪽에서]는 도시의 대명사 홍대앞에서 밤낮을 죽치던 한 영혼이 제주라는 섬, 그 속에서도 서쪽에 마음을 빼앗긴 뒤 가슴 졸이며 연애편지 쓰듯 털어놓는 자기고백서다. 한때 잘 나가던 대중공연 연출가의 길을 자의반 타의반 접은 그 남자는 민감한 이슈에 대한 사회적 발언을 멈추지 않으며 ‘흔들리며 흔들거리며’ 살았다. 그 남자는 공연이나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날로 악랄해지면서 그의 믿음을 깨버렸다. 그러다 제주의 서쪽을 만났고, 그 남자는 그렇게 제주의 서쪽과, 서쪽 사람들과 닮아가기 시작했다.
저자
탁현민
출판
미래를소유한사람들
출판일
2014.10.29
 
탁현민
직업
공무원, 공연기획자
소속
-
사이트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