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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할 수 있나?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category 글/책을읽다 2022. 10. 10. 19:45

 

  작별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미루는 거야. 작별을? 기한 없이? 인선은 경하에게 계속 물었다. 함께 진행하기로 한 프로젝트 제목이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경하의 대답을 들을 이후로. 

  재난 지역이나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곳을 돌며 교훈을 얻는 여행을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한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서 다크 투어를 치면 나오는 결과다. 현장을 방문하고 기록을 읽으며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어둠이 전염된다. 이미 어둡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사람은 담담하게 말하는 편이다. 한강은 달랐다. 직접적으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미 풍겨오는 분위기로 광주에서 제주로 5월에서 4월로 끌려 갔다. 작가가 말하듯이 한 없는 추위 한가운데에서 속으로부터 한기가 치솟아 올라 머리엔 두통을 위에는 경련을 가져온다. 가슴에 돌덩이들이 얹어져 숨쉬기 곤란하다. 읽기 힘들다. 그만하고 싶다. 불편하다. 

  경하는 작가다. 그녀는 5월 그 도시의 학살 이야기를 썼다. 자료 준비에서부터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경하는 책을 내고 나면 악몽이 멈추리라 기대했다. 헛된 기대. 인선은 사진 작가다. 영화 감독이다. 나무로 물건을 만든다. 인선은 눈 많이 내리던 날 손가락을 다친 채로 경하에게 연락한다. 제주 집에 홀로 남아 있는 앵무새 아마를 부탁한다. 경하는 서울에서 제주로, 공항에서 한적한 곳에 있는 P읍으로, P읍에서 세천리로,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눈을 헤치고 인선의 집으로 향한다. 몇 번의 포기를 집어 넣고 나아간다. 아마는 이미 횃대에서 떨어져 있다. 언 땅에 묻어두고 머리를 으깨는 두통과 위경련을 안고 잠에 든다. 깨고 나서 집을 찾은 인선을 만나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 외삼촌,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5월의 그 도시와 비슷한 이 도시의 경험담과 기록을 전해 받는다. 

  한강은 작가의 말에서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고 썼다. 생존자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생존으로든 유골로든. 그들은 살아 있는 자들도 아니고 장례를 치른 죽은 자도 아니다. 그들과는 작별하지 못 했다. 절단 된 손가락 마디를 봉합한 인선은 3분 마다 수술 부위를 찔러야 한다. 피가 멈추지 않게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신경이 죽어버린다. 생존자들은 일상생활을 하다 빈 틈을 노려 바늘이 그들을 찌른다. 밤엔 악몽의 형식으로 찾아 온다. 인선 어머니는 잠자리 밑에 실톱을 깔고 잠들었다. 아버지는 멍한 눈으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고 2018년 『흰』으로 같은 상 최종 후보에 오른 한강 작가의 5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출간되었다. 2019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전반부를 연재하면서부터 큰 관심을 모았고, 그뒤 일 년여에 걸쳐 후반부를 집필하고 또 전체를 공들여 다듬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본래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2015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작별」(2018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을 잇는 ‘눈’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구상되었으나 그 자체 완결된 작품의 형태로 엮이게 된바, 한강 작가의 문학적 궤적에서 『작별하지 않는다』가 지니는 각별한 의미를 짚어볼 수 있다. 이로써 『소년이 온다』(2014), 『흰』(2016), ‘눈’ 연작(2015, 2017) 등 근작들을 통해 어둠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고투와 존엄을 그려온 한강 문학이 다다른 눈부신 현재를 또렷한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래지 않은 비극적 역사의 기억으로부터 길어올린, 그럼에도 인간을 끝내 인간이게 하는 간절하고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가 눈이 시리도록 선연한 이미지와 유려하고 시적인 문장에 실려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저자
한강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1.09.09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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