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전자레인지

category 글/짧은글 2022. 10. 13. 10:54

 

전자레인지 없이 어떻게 살아요?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는 의식주다. 대화의 기본 소재도 여기에서 나온다. 유행하는 옷이 어떤 것이더라. 더워서 반팔 반바지를 입어야겠다. 나이가 들면 옷 색이 어두워지고 단순해진다. 부동산 시세가 어떻더라. 아파트에서 사는 걸 선호한다. 집은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팔기 위해 사야 된다. 1인 가구가 살기에도 30평 이상 집은 필요하다더라. 어떤 식당이 맛있다. 배달 음식 주문하기 쉬워지고 밀키트가 주위에 많아 먹는 고민이 줄어든다. 이렇게 음식을 해봤더니 맛있더라. 주방 가전제품이 추가될 때마다 삶에 질이 늘어난다더라. 

식은 먹는 이야기다. 먹는 이야기가 나오면 자주 만들어 먹는 조리법이 등장한다. 불 위에서 조리하는 방법이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어기로 조리하는 방법보다 적게 소개된다. 설명을 다 듣고 전자레인지 없다라고 하면, 희귀한 사람 보듯 한다. 필요가 없었다. 전자레인지로 할만한 음식은 가스레인지로 조리할 수 있다. 치즈 녹이거나 식은 음식을 데우는데 프라이팬과 뚜껑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주요한 점은 할 수 있는 것인가와 불편한가이다.

가로가 긴 직사각형. 사면이 검은색에 정면 유리 중간은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투명한 유리다. 만든 회사 이름은 앞 왼쪽 아래 모서리에 색감 없이 위치한다. 조리 시간과 음식 종류를 고를 수 있는 버튼과 액정 표시는 오른쪽에 모두 모아 두었다. 서랍장엔 이미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10년 가까이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식탁에서 몇 번 전자레인지 사는 이야기가 나왔다. 동생이 꺼내는 편이었다. 듣는 내내 엄마와 나는 동의하는 뜻으로 고개 끄덕였다. 대화 끝 부분에서 필요성을 무색하게 하는 전자레인지를 사도 별반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로 결론이 난다. 그렇게 전자레인지는 집에 들어 올 기회를 번번히 잃었다. 

전자레인지를 샀다. 도착하는데 5일 정도 걸린다. 그 사이 전자레인지로 뭘 할까 서로 물어본다. 딱히 사용 계획이 떠오르지 않는다. 할게 없으면 인테리어로 쓰면 되지. 구매 실행을 주위에 알렸더니 활용 방법들이 쏟아진다. 비슷한 사연도 들려준다. 결혼하며 전자레인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구매하지 않고 신혼을 시작했다. 이후 전자레인지를 샀는데 일상생활과 육아에 신세상이 열린 듯했다고 한다. 살균 소독을 전자레인지에서 한다. 오븐이 되는 전자레인지가 있다. 그것으로 샀나? 아쉽다. 전자레인지보다 오븐 욕심이 더 있었는데. 오븐 기능과 전자레인지가 합쳐져 있으면 청소가 힘들어 사지 못 한 에어 프라이기를 대신할 수 있었을 텐데. 다음 전자레인지는 오븐 기능이 들어간 제품으로 선택이다. 

전자레인지가 도착하고 추석이 왔다.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낸다. 튀김 꺼낸다. 고기 꺼낸다. 명절엔 상다리 부러지게 많은 음식과 찬들이 올라온다. 전자레인지 속에서 1분이나 2분 정도 빙글빙글 돌다가 상으로 간다. 저녁을 먹고 남거나 애매한 인분이 된 밥을 냉동고로 넣어 버린다. 음식을 담던 용기에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 표시가 붙기 시작한다. 주의사항을 인터넷에서 찾아 본다. 그리고 서로 공유한다. 전자레인지의 꽃이라 생각했던 냉동식품은 아직 집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 > 짧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대 바뀜  (0) 2022.10.20
그러려니  (0) 2022.10.19
만조국 미국  (0) 2022.10.17
삶을 관통하는 주요 단어  (0) 2022.10.14
지하철은 진동모드  (0) 2022.10.13
보일러  (0) 2022.10.11
독서 단점  (0) 2022.10.11
네모 박스  (2) 2022.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