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네모 박스

category 글/짧은글 2022. 10. 5. 10:09

 

 지금 카페에 있다. 글을 쓰는 자리에서 왼쪽으로 고개 돌리면 직원의 고유 공간이 있다. 그 사이 4인용 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다. 2미터 떨어진 거리에 내부는 비치지 않는 문과 창으로 가로 세로 2미터 공간을 막고 있다. 천장 사이에는 기둥조차 없이 뚫려 있다. 평소와 달리 이곳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 곳으로 들어간 사복 직원이 유니폼으로 갈아 입고 나와서다. 유니폼 차림을 한 다른 직원은 사복으로 나왔다. 직원이 머물던 그 시간 동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상상이 청각을 침범했다. 직원은 의도치 않게 내 시간을 뺏았다.

  그들은 네모 박스 안에서 사적 공간이어야 한다. 문에는 번호키가 달린 잠금 장치가 되어 있다. 비밀번호만 아는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다. 손님들에게 방문이 금지 된다. 이용자들은 그 곳 문을 열고 닫을 때에도 스피커로 틀어져 나오는 노래 소리를 끊기지 않게 듣는다. 그들은 카페 내 대화 소리를 듣고 손님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재작년 관공서에서 일이다. 행사가 있어 사무실과 복도에 관계자들이 많았다. 복도 자판기 옆으로 쌓인 박스가 보였다. 박스는 자판기 옆으로 두 면을 가리게 세워져 있었다. 그 속에서 머리 하나가 종이 박스 밖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청소하는 직원이었다. 그 자리에 머물던 십 여분 이상의 시간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최근 대학교 청소노동자의 파업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들의 휴게실은 위 경우보다 개선되었으나 충분치 않다. 학교 측 관계자 인터뷰 기사에서는 다른 학교보다 나은 시설임을 주장했다. 과거에 비하면 개선 되었다. 다른 곳의 상황은 암울하다. 화장실에서 식사하고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경우를 기사로 접했던 기억이 있다. 

  평소라면 같은 기간 동안 화제성이 부족했을 사건이지만 어느 학생이 학습권 침해 소송으로 청소노동자 파업은 좀 더 긴 시간 동안 화제가 되었다. 지금은 찾아보지 않으면 기사를 접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피해, 권리 주장은 먼 나라 이야기 취급 당한다. 모 대기업 입사를 준비중인 취준생은 입사 후 본인을 노동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노동자를 검색하면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그가 노동자의 정의를 모를 리 없다. 그를 이해해보려 노력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가 정의하는 노동자는 여러 등급이 있다. 자신과 사회에서 노동자라 칭하는 위치가 다를 뿐이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법적인 보호 제도 아래 있는 사람들과 같지 않다. 보호 받아야 하는 노동자는 중소기업, 계약직, 파견과 같이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노동자를 위한 법과 제도를 이미 대기업의 정규직 직원들도 누리고 있음에도 말이다. 

  대체가 가능한 노동자일수록 주장은 존중 받지 못하고 안전과 대우는 그에 걸맞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같은 산업의 발전으로 인간을 대체하는 디지털이 속도를 내고 있다. 모 대기업에 입사하는 취준생은 그 위치를 지킬 수 있다고 보장 할 수 있을까?  그가 정의 내린 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 > 짧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러려니  (0) 2022.10.19
만조국 미국  (0) 2022.10.17
삶을 관통하는 주요 단어  (0) 2022.10.14
전자레인지  (0) 2022.10.13
지하철은 진동모드  (0) 2022.10.13
보일러  (0) 2022.10.11
독서 단점  (0) 2022.10.11
소셜네트워크에서의 죽음  (0) 202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