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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은 진동모드

category 글/짧은글 2022. 10. 13. 00:30

 

벡스코로 가는 일정이었다. 3회 부산일러스트레이션페어를 보기 위한 길이다. 올해부터 시작한 드로잉 수업 영향으로 관심이 생겼다. 평소라면 출발하지 않았을 발걸음이다. 인스타그램을 검색하면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관심이 생겼더라도 움직이지 않을 방법이 많을텐데 이미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 있다. 더 쾌적한 환경에서 볼 수 있다. 커피 한 잔과 노래를 틀어 놓고 의자를 20도 기울여 기댈 수 있다. 작가들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을까 기대하며 걸었다.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이 목적 중에 하나다. 

 


  드로잉 수업에서 손을 움직여서 종이에 연필로 선을 그으며 그림을 배웠다.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사물과 분위기에 따라 써야 하는 선이 다르다. 빛의 세기와 그림자에도 다른 명암을 가져 강약으로 표현한다. 화룡점정은 지우개로 밝혀 표현 하는 부분이었다. 경이롭게 느껴졌다. 지우개질 몇 번에 움직이는 그림처럼 보였다. 그 대부분은 드로잉 선생님 손에서 표현 된 것이다. 손대기 전과 후가 다르다. 끝난 작품은 내 것이 아니었다. 완성 했으니 모서리에 서명하라는 말에 선뜻 하지 못 했다. 그리고 선생님 손 움직임을 통해 배웠다. 다른 수강생을 봐주는 동안에도 선생님 손을 지켜봤다. 그 기대로 벡스코로 향한다.

  그 사이 휴대폰에 찍힌 부재 중 전화가 한 통 있다. 환승하는 시간 동안 통화를 했다. 아내에게 사정이 생겨 출근 전까지 시간이 빈다. 같이 가고 싶다. 연산역에서 만나자. 사직역에서 연락주면 시간 맞춰 승강장에서 기다리겠다. 지하철 안이라 통화는 어렵고 문자를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사직역에 도착해 문자를 보낸다. 사직역 출발이다. 첫 번째 열차에 타고 있다. 답이 왔다. 잠깐 늦으니 승강장에서 기다려라. 연산역에서 내린다.

 


  첫 번째 열차에서 내려 역사로 올라가는 계단 앞 의자에 앉았다. 이동 시간 동안 읽을 책을 준비해 왔다. 그것을 읽기 시작한다. 책 몇 쪽을 읽어 나갈 때 노인 한 명이 의자에 다가와 앉았다. 잠깐 책에서 뗀 눈을 다시 가져온다. 몇 쪽 더 읽어 나간 후 진동이 느껴진다. 승강장에 열차가 들어오는 낌새는 없다. 진동 후에 소리가 이어진다. 소리가 끝나자 진동이 그리고 소리가 들려온다. 번개 치고 난 후 천둥이 들리는 이유는 빛의 속도가 소리 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개가 번쩍하고 난 후 천둥의 우르르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방귀 힘이 철제 의자를 흔드는 진동이 소리보다 빠르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이거나 소리 없는 방귀가 먼저 철제를 흔들고 뒤이어 나온 공기가 밀려나와 소리로 들려지는 것이리라. 노인은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몸 속 깊은 곳에 있는 한 줄기 공기마저 힘으로 밀어 낸 후 승강장에 가서 줄을 선다. 아직 열차는 들어오지 않았어요. 제게 왜 그래요?

  부산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서 작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지 못 했다. 그림 구경 실컷 했다. 상품들도 함께 팔고 있었는데 눈이 작품들을 향해 있어 그들에겐 사뭇 미안하다. 명함 몇 장 얻었다. 손에 쥐기 싫어 무료 나눔 글자가 적혀 있어도 가져오지 않았다. 손으로 건네주는 물건은 거절하기 힘들다. 책갈피로 쓰기에 적당해 보여 감사 인사로 값을 대신한다. 집에 도착해 인스타그램을 열어보니 피드에 추가 된 작가들 글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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