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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절하게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 이 책을 기억하고 있는 건 어렴풋한 감정이었다. 등장인물 이름이나 이야기와 같은 글자로 적은 것이 아니다. 베르테르가 샤를로테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다 죽음을 맞는 동안 느낀 감정이었다. 처음 읽었던 때는 사랑 앞에서 직진이었다. 이성보다 감정이 나서서 마음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던 시절이었다. 알베르트에게 적대를 느끼고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샤를로테를 미워할 수도 없었다. 서로 엇갈리는 마지막은 안타까웠다. 마지막에 죽음이 아니었어도 둘은 엇갈렸을 테지만 아쉬움이 가득했었다. 

 

시간 지나 책을 다시 읽었다. 이전에 읽은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베르테르가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는다. 젊고 유능한 감성이 풍부한 베르테르는 생활에 만족해 보였다. 바쁘게 사는 남들과는 다르게 작은 것에 만족하고 걱정 없이 다가올 겨울을 기다리는 사람을 보며 위안을 삼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리고, 샤를로테를 만난다. 첫눈에 반한다.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지만 마음을 꺾을 수 없다. 샤를로테와 알베르트, 베르테르가 함께 하는 어색한 시간이 계속된다. 알베르트와 베르테르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한계점을 넘기고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을 느끼게 된다. 알베르트와 결혼한 샤를로테는 베르테르와 거리를 두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총을 빌려 목숨을 끊는다. 빵과 포도주를 먹으며 주변을 정리하고 샤를로테에게 남길 편지를 틈틈이 적는다. 남은 짐을 모아 빌헬름에게 보낼 준비를 한다.

그들은 보통 생계를 해결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지. 그러다 잠깐이라도 여가 시간이 주어지면 지레 겁을 먹고 거기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쳐. 아, 인간의 운명이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서 볼 법한 문장을 여기서 발견한다. 먹고사는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벗어날 수 없다. 놀아보지 못 한 이는 여유가 생겨도 시간을 펑펑 쓰지 못한다. 일하는 시간에 고마워하며 다시 일손을 놀린다. 인간의 운명이란! 여러 부분에서 계몽적이며 세상을 유유자적하게 바라보는, 세상이 추구하는 성공을 높이 보지 않고 지금에 만족하는 시선을 보인다.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돌던 방랑자가 결국에는 조국을 그리워하는 것도 그런 연유라 할 수 있어. 넓은 바깥세상에서는 찾지 못했던 행복을 작은 오두막과 아내의 품, 자식들의 재롱, 그리고 가족을 부양하는 일에서 발견한 거야. 

 

베르테르는 자신만만한 남자다. 삶을 오래 산 듯한 깊이와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본다. 격한 행동에 숨어 있는 사정을 감안한다. 그것 없이 격한 행동에 비판을 하는 자에게는 단호한 철퇴를 휘두른다. 

“당신 같은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금세 ‘그건 어리석다, 현명하다, 좋다, 나쁘다!’ 하는 식으로 단정 짓는 버릇이 있네요.” 내가 소리치며 반박했어. “하지만 그런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속사정은 다 고려해 본 건가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왜 그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나요? 만약 그랬다면 그토록 성급하게 단정 짓지는 못할 겁니다.” 

“열정! 취기! 광기! 당신 같은 도덕주의자들은 늘 그렇듯 무심하게 수수방관하면서 술꾼들을 비난하고 광인들을 혐오하죠. 그리고 성직자들처럼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가면서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이 그런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리고요. 나는 술에 취한 적이 여러 번 있어요. 내 열정은 광기와 크게 다를 바 없고요. 하지만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위대한 일,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비범한 사람들은 옛날부터 술주정뱅이나 미치광이로 매도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평범한 삶에서까지 그런 취급을 받는다면 정말 참기 힘들 겁니다. 누군가 예상치 못했던 자유롭고 고결한 일을 했을 때 아직 그 일이 진행 중임에도 뒤에서 ‘저자는 지금 술에 취해서 그래, 저자는 멍청해서 저러는 거야!’라며 이런저런 뒷말을 수군거리는 거 말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이성적이고 현명하다고 자부하는 자들은 창피한 줄 알아야 합니다!” 

 

괴테에게 인생을 배운다. 

 인간이란 존재는 원래 모든 것을 자신과 비교하고, 또 거꾸로 자신을 다른 것과 비교하도록 만들어졌지. 따라서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비교하는 대상이 누구냐에 달려 있는 셈이야. 그러니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것은 바로 고독이야. 우리의 상상력은 자신을 더 높이 고양시키려는 본성에서 추동력을 얻고 문학 작품 속의 비현실적인 비유들을 자양분 삼아서, 우리 자신은 가장 저급한 존재로 비하하고 나머지 모든 존재는 우리보다 훌륭하고 완벽한 것으로 만들어버려.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진행 과정이야. 그 결과 우리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 우리한테 없는 것을 다른 사람은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또한 우리만 갖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도 전부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덤으로 그 사람은 참으로 이상적이고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버리는 거야. 그렇게 해서 완벽하게 행복한 인물이 하나 완성되는데, 사실 그건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다루는 글에서는 사랑이야기가 주인데, 삶에 대한 지혜서로 읽었다. 사랑 앞에 솔직할 수 없고, 감정보다 이성이 먼저이고, 둘이 당연시되던 시대를 지나 혼자여서 괜찮고, 신념을 위한 죽음도 말리고 싶으니, 베르테르를 이해해도 편들어 줄 수 없다. 그럴 만 하지만 꼭 다 그렇지는 않더라. '시간 지나면 다 변한다. 괜찮아진다'라는 말이 위안이나 공감이 되어 줄 수 없겠지만 살아보니 그렇더라. 오히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일주일 내외로 짧은 기간 동안 불꽃처럼 사랑에 빠져서 죽음으로 결론짓는 편이 낫다. 20대가 아니어도 불 같은 마음을 진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빌헬름은 베르테르에게 무슨 말을 해 주었나. 

친구,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을 때 그런 사람을 보면 마음에 많은 위로가 돼. 자신의 작은 생활 반경 안에서 평탄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 낙엽이 지는 것을 보고는 겨울이 다가온다는 것 외에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야.

 

베르테르, 너도 이렇게 살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고뇌하다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베르테르의 이야기를 그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대문호 괴테가 스물다섯 살에 쓴 첫 소설이다. 250년 전 소설임에도 현대인의 공감과 유대를 불러오는 내용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문체로 쓰인 희대의 명작이다. 당대 ‘베르테르 신드롬’이 왜 생겨났는지 단박에 알 수 있을 만큼 흡입력이 뛰어난 작품으로, 간단한 플롯이 어떻게 깊은 감동으로 남을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 베르테르가 즐겨 입던 노란색 조끼와 푸른색 연미복이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모방 자살까지 행해졌다. 현대에 와서도 ‘첫사랑’이라는 테마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바이블 같은 작품이다. 젊은 괴테가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이 작품은 단순히 애정을 갈구하다 실패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베르테르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큰 틀을 이루고는 있으나, 베르테르와 대비되는 알베르트를 묘사할 때는 ‘감정’과 ‘이성’, 더 나아가 ‘개개인의 감성’과 ‘획일화된 집단’의 대립 구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신분의 차이로 차별받는 계급적 인식, 고된 업무를 벗어나 자연을 꿈꾸는 사회인으로서의 고민이 두루 담긴 철학적 텍스트의 면모를 보인다. 베르테르의 목소리로 표현되는 문학, 예술, 자연에 대한 감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문학적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이 모든 가치를 넘어서는 것은 역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근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이고 위험한, 순수하면서도 뜨거운 ‘사랑’이다. 오늘날까지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재생산되며 큰 사랑을 받는 이유 역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 사랑에 대한 순수한 열망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윌북 클래식 첫사랑 컬렉션〉에 담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에 사는 주인공들이 어떻게 같은 애정과 고민을 안고 삶을 영위하는지, 그리고 그 모습은 지금 우리 모습과 얼마나 비슷한지 보여준다.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출발점으로서의 ‘첫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
저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출판
윌북
출판일
2022.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