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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8권 - 제4부 전쟁과 분단

category 글/책을읽다 2023. 1. 20. 11:13

pixabay

해방구로 내려왔던 이들은 빨치산 투쟁으로 전환한다. 지난 거대한 역사 속에 이름 없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전쟁 기록을 다룬 징비록처럼 태백산맥은 기록에 치중한다. 일제 강점기부터 6.25까지 계층 간 갈등과 학살은 계속 반복되었다. 갑갑함이 사라질 만하면 답답해졌다. 계속되는 숨 막힘에 감정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외면하고 싶었다. 

 

전쟁은 모든 걸 둘로 나누고 하나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민기홍은 쌀보다는 잡곡이 더 많은 밥을 아무 맛도 모르고 씹고 있었다. 그는 이미 어느 한쪽 편에 가담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처자식을 굶겨죽이지 않기 위해서건 어쨌건 간에 자신은 전시상황의 신문사에서 펜대를 놀리기 시작하면서 일방적으로 한쪽 편만을 들게 되었다. 전쟁은 정치의 적극적 수단이면서, 정치의 목적인 인간의 인간적 삶 자체를 파괴하는 괴물이었다. 전쟁의 기본은 적과 우방을 간단하고 명확하게 가르는 것이었다. 그 양분법 앞에서는 그 이외의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중도적 입장은 기회주의일 뿐이었고, 객관적 입장은 방관주의일 뿐이었고, 종교적 사고는 허무주의일 뿐이었고, 개인적 판단은 이기주의일 뿐이었다. 전쟁이 정치를 넘어서 역사라는 명분과 맥을 대고 있을 때 그런 결론은 더욱 선명해졌다. 민기홍은 기회주의자이며 방관주의자이며 허무주의자이고 이기주의자인 자신이 그나마 해체되어 버리고 한쪽에 가담되어 있는 초라한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것을 박차지 않고 주저앉아 있는 것을 체념주의나 패배주의라고 한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전쟁이 가진 속성이다. 재산 손해를 입는 상황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기 어려운 판에, 생명이 담보되어야 하는 전쟁에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기는 어렵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럽게 선택 한 셈이다. 태백산맥을 통해 여러 번 목격했다. 민기홍도 그와 같다.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 이야기.

백두산이 담아 인 물을 '천지'라 하였고 한라산이 담아 인 물을 '백록담'이라고 한 것이다. 그 두 이름이 갖는 공통점은 '하늘'인 것이다. 그런데 '하늘의 뜻이라는 뜻인 천지에는 절대한 존재인 하느님이 막연하게 상징되고 있는데 반하여 '흰사슴의 옷'이라는 백록담에는 하늘에만 산다는 하얀 사슴들이 내려와 목욕하는 터라서 그런 이름이 지어진거라는 사연이었다. 백록담에는 그런 구체적인 내용의 전설이 있는데 왜 천지에는 그런 것이 없을까. 그리고 천지가 상징하고 있는 하느님과 백록담의 하얀 사슴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어쩌면, 하느님께서 천지에 하강하시어 목욕을 하셨다거나, 낯을 씻으셨다거나 발을 씻으셨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은 절대신성에 대해 불경을 범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하얀 사슴의 무리는 하늘나라에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무슨 일을 땀 흘려 했기에 목욕을 하러 내려오는 것일까. 아마도 하얀 사슴들은 세상만상의 생성과 소멸을 도맡고, 질서와 조화를 다스리는 하느님을 모시고 다니는 일을 하고, 하느님이 고단하시어 발이라도 천지물에 담그고 계시는 틈을 내어 한라산의 못에 목욕을 하러 내려오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야기가 그렇게 연결되는 것이 틀림없다 해도 옛사람들의 노력은 똑같이 닮은 두 산의 못에 그런 이름을 짓게 된 연유를 밝힌 것일 뿐, 두 가지의 신비를 밝혀낸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전설이 밝혀내고 있는 것은 두 산이 닮은 모습을 하고 반도땅의 끝과 끝에 자리 잡은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라는 필연의 관계설정이었다. 

 

백두산 천지에 전설이 없었다니 신기하다. 조그마한 것에도 의미를 새기는 법인데 백두산 천지처럼 어마어마한 것을 그대로 두다니 역설적이다. 

 

 
태백산맥 8: 제4부 전쟁과 분단(개정판)
1948년 10월, 전남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14연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주동은 좌익사상을 지닌 하급 지휘관들이었다. 여수와 순천이 그들 손에 넘어가고, 염상진을 중심으로 한 민간 좌익세력이 벌교를 장악한다. 그들은 인민재판을 열어 악질 지주들을 비롯한 이른바 반동세력을 공개처형한다. 하지만 토벌군의 대대적인 진압작전에 밀린 반란군은 산악지역으로 퇴각하고, 벌교를 장악했던 염상진도 안창민, 하대치 등과 함께 입산, 빨치산 투쟁에 돌입한다. 그 즈음 대학생 정하섭은 남로당 상부의 명령에 따라 순천 지역에 파견되었으나, 상황이 불리해져 퇴각하면서 고향 벌교로 숨어든다. 그는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제각에 살고 있는 무당의 딸 소화를 몰래 찾아든다. 소화는 정하섭이 요구하는 비밀스런 심부름을 하게 되고, 둘 사이엔 애틋한 사랑이 싹트는데……. 친일 지주세력을 기반으로 한 이승만 정권은 지주들이 반대하는 농지개혁을 쉽사리 단행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지주들은 친척 앞으로 명의변경을 하거나 남에게 팔아넘기는 수법으로 농지를 빼돌린다. 반면 양심적인 지주이면서 무교화주의자인 서민영은 자기 땅을 소작농민들과 공유하여 협동농장을 세우고, 야학을 운영한다. 벌교의 계엄사령관이었던 심재모는 서민영, 김범우 등의 도움으로 겨우 용공 혐의를 벗고 풀려나 태백산 지구 공비토벌에 투입된다. 심재모의 후임 백남식도 보성과 벌교 산골짜기마다 병력을 투입해 빨치산 토벌에 나선다. 위기에 빠진 빨치산부대는 적극적인 투쟁에서 조직을 보존하고 살아남는 투쟁으로 돌아선다. 농지개혁이 실시되었으나 농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이승만 세력은 그 무렵 치러진 총선에서 크게 패배한다. 곧이어 6.25 전쟁이 발발한다. 인민군에 밀린 국군은 남쪽으로 후퇴를 거듭한다. 인민군이 남부지방까지 내려오자 벌교 경찰은 좌익에서 전향한 사람들로 구성된 보도연맹 원들을 모두 소집하여 벌교에서 철수하기 직전에 그들을 무차별 학살한다. 경찰이 떠난 뒤에 벌교는 다시 염상진, 안창민, 하대치 등의 좌익세력에게 장악되고, 그들은 읍면마다 인민위원회와 여성동맹위원회, 청년동맹위원회를 결성하고, 이북식 농지개혁을 단행한다. 미군 부대를 탈출한 김범우는 눈 속을 헤매다가 인민군에게 체포되고, 인민군의 통역관을 맡게 된다. 중국의 개입으로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삼팔선 부근에서 대치 상태가 지속된다. 그런 상황에서 퇴로가 막힌 인민군과 빨치산 부대는 전남북과 경남, 지리산 일대에서 유격투쟁을 계속한다. 후방에서 빨치산 대원들이 입을 옷을 짓는 일을 하던 소화는 발각되어 감옥에 갇히고 그곳에서 아기를 낳는다. 휴전회담이 시작되면서 토벌대의 공격은 더욱 거세지고, 빨치산들은 근거지인 해방구를 자꾸 잃어간다. 겨울을 맞아 토벌대는 엄청난 화력과 병력을 동원해 전남북과 경남, 지리산에 동계대공세를 편다. 가혹한 추위 속에서 수많은 빨치산들은 얼어 죽고 굶어 죽고 총에 맞아 죽어가며 시나브로 소멸되어간다. 하지만 그들은 항전을 멈추지 않는데…….
저자
조정래
출판
해냄출판사
출판일
2020.10.15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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