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첫 문장부터 읽는 사람을 휘어잡는다. 처음 봤을 때 양각 조각을 한 듯 '전봇대' 단어가 튀어나왔다. 작가의 말까지 읽으며 마지막 종이를 넘기고 나니 '아버지가 죽었다'라는 문장이 다가왔다. '아버지는 해방되었다'로 풀이한다. 작가는 첫머리에서 끝맺음으로 글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산 삶은 그 자체로 완성이었으나,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눈 이념폭풍에 섰다는 이유로 죽음 전까지 짐을 짊어지고 산다. 우익과 좌익은 죽은 아버지를 배웅한다. 9살 이후 70여 년 동안 아버지를 가까이 하지 못 했던 작은 아버지는 재가 된 아버지를 받아 든다. 아리는 장례식장을 방문하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조각을 끼워 맞춘다. 감옥 생활 후 어색해진 아버지와 아리는 장례를 통해 다시 가까워진다.
「도대체 이념이 인간의 뭘 해결한다는 거야.」
- 태백산맥
2022년은 대선이 있어서인지 날 선 의견이 많은 한 해였다. 이념을 주제로 다룬 대하소설을 읽으며 민초가 죽어간 역사를 날것으로 보면서 가슴이 갑갑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생겼지만 다음으로 미루었다. 상처가 가득한 가슴이 아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작가가 이전에 쓴 《빨치산의 딸》에서 제목이 주는 부담도 한몫했다. 20대에는 세상에 대한 반항심으로 어느 한 편을 응원하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아무렇지 않을 만도 한데, 마주 선 양쪽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오는 아픔은 지나가는 시간이 매만져주지 못했다. 작가와 책에 대해 묻고 답하는 영상은 예상과는 달랐다. 유튜브를 보면서 읽어도 되겠다 생각했다. 인간이 중심에 있는 글 같았다.
초록색이 가득한 책 표지는 빨치산에 대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자전거 타는 사람이 입은 상의, 집, 지붕, 깃발에 칠해진 색을 핑계 삼는다면 억지추측이다. 제목 사이에 있는 빨간색 별 하나는 눈에 띈다. 작가는 책 표지에서 빨치산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는 요소를 넣지 말아 달라고 출판사에 말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248.
'아버지는 빨치산이다'와 '빨치산 아버지'의 차이랄까. 아버지는 생을 살았다. 그 속에 이념도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념을 판단으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아픈 역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글 > 책을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자 #16 - 독실한 고요함을 지켜라 (0) | 2023.02.22 |
---|---|
워런버핏 라이브 #13 - 1998년, 잘 모르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0) | 2023.02.21 |
토지 2권, 박경리 (0) | 2023.02.14 |
노자 #15 - 미묘현통 (0) | 2023.02.13 |
워런버핏 라이브 #12 - 1997년, 변동성은 위험이 아닙니다 (0) | 2023.02.08 |
노자 #14 - 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 것 (0) | 2023.02.07 |
변신, 프란츠 카프카 (0) | 2023.02.03 |
워런버핏 라이브 #11 - 1996년, 내재 가치는 미래의 현금흐름을 현재 가치로 할인한 것 (0) | 2023.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