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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category 글/책을읽다 2023. 2. 10. 10:07

pixabay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첫 문장부터 읽는 사람을 휘어잡는다. 처음 봤을 때 양각 조각을 한 듯 '전봇대' 단어가 튀어나왔다. 작가의 말까지 읽으며 마지막 종이를 넘기고 나니 '아버지가 죽었다'라는 문장이 다가왔다. '아버지는 해방되었다'로 풀이한다. 작가는 첫머리에서 끝맺음으로 글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산 삶은 그 자체로 완성이었으나,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눈 이념폭풍에 섰다는 이유로 죽음 전까지 짐을 짊어지고 산다. 우익과 좌익은 죽은 아버지를 배웅한다. 9살 이후 70여 년 동안 아버지를 가까이 하지 못 했던 작은 아버지는 재가 된 아버지를 받아 든다. 아리는 장례식장을 방문하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조각을 끼워 맞춘다. 감옥 생활 후 어색해진 아버지와 아리는 장례를 통해 다시 가까워진다.

「도대체 이념이 인간의 뭘 해결한다는 거야.」
 - 태백산맥

 

2022년은 대선이 있어서인지 날 선 의견이 많은 한 해였다. 이념을 주제로 다룬 대하소설을 읽으며 민초가 죽어간 역사를 날것으로 보면서 가슴이 갑갑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생겼지만 다음으로 미루었다. 상처가 가득한 가슴이 아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작가가 이전에 쓴 《빨치산의 딸》에서 제목이 주는 부담도 한몫했다. 20대에는 세상에 대한 반항심으로 어느 한 편을 응원하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아무렇지 않을 만도 한데, 마주 선 양쪽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오는 아픔은 지나가는 시간이 매만져주지 못했다. 작가와 책에 대해 묻고 답하는 영상은 예상과는 달랐다. 유튜브를 보면서 읽어도 되겠다 생각했다. 인간이 중심에 있는 글 같았다. 

 

초록색이 가득한 책 표지는 빨치산에 대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자전거 타는 사람이 입은 상의, 집, 지붕, 깃발에 칠해진 색을 핑계 삼는다면 억지추측이다. 제목 사이에 있는 빨간색 별 하나는 눈에 띈다. 작가는 책 표지에서 빨치산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는 요소를 넣지 말아 달라고 출판사에 말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248.

 

'아버지는 빨치산이다'와 '빨치산 아버지'의 차이랄까. 아버지는 생을 살았다. 그 속에 이념도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념을 판단으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아픈 역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무려 32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써내는 작품마다 삶의 현존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작가는 이번에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대작을 선보임으로써 선 굵은 서사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한모금 청량음료 같은 해갈을 선사한다. 탁월한 언어적 세공으로 “한국소설의 새로운 화법을 제시”(문학평론가 정홍수)하기를 거듭해온 정지아는 한 시대를 풍미한 『빨치산의 딸』(1990) 이래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만을 현재적 배경으로 다루지만, 장례식장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은 정지아만이 가능한 서사적 역량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는 어쩌면 ‘가벼움’에 있다. “아버지가 죽었다. (…) 이런 젠장”으로 시작하는 첫 챕터에서 독자들은 감을 잡겠지만 이 책은 진중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각 잡고’ 진지한 소설이 아니다. 남도의 구수한 입말로 풀어낸 일화들은 저마다 서글프지만 피식피식 웃기고, “울분이 솟다 말고 ‘긍게 사람이제’ 한마디로 가슴이 따뜻”(추천사, 김미월)해진다.
저자
정지아
출판
창비
출판일
2022.09.02
 
정지아
직업
소설가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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