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수는 사냥을 나선다. 초록은 동색이라 수동은 표적이 된 구천을 불렀다. 치수는 구천을 쫓아 산에 머문다. 최참판댁에 머무를 때에 없던 생기가 돌고 활기가 넘친다. 치수는 연곡사에 들러 우관스님을 만난다. 냉기가 돈다. 창과 칼을 손에 들지 않았을 뿐 매서운 말로 찌르고 벤다.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몰라 불안하고, 아는 게 맞을까 봐 불안하다.
"핏줄을 거역할 수 있다 생각하시오?"
우관스님은 말이 없었다. 치수는 머리털 하나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우관선사의 전신을 눈으로 핥았다.
"거역할 수 없을 게요."
한참 만에 대답이 돌아왔다. 치수는 회심의 미소를 띤다.
“그렇게 대답하실 줄 믿었소이다."
"그러면은 참판댁 나리께서는 핏줄을 거역하실 수 있단 말씀이오?"
"예, 그렇소이다. 피를 더럽힌 자에 대해서는,"
"옹졸하도다."
나직한 소리로 우관은 한탄했다. 151. 14장 추적.
윤씨부인은 겁탈을 당한 피해자이지만 핏덩이를 버린 것과 몸을 버린 것에 죄를 졌으며 매를 피하려 하지 않는다. 최치수는 달라진 어머니를 느끼고 미심쩍은 정황들을 기억했다. 이 둘은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며 각자 형벌을 졌으리라.
윤씨부인은 끊임없이 매질을 하던 형리를 잃었다. 생전의 최치수는 아들이 아니었으며 가혹한 형리였던 것이다. 그것을 윤씨부인은 원했다. 원했으며 또 그렇게 되게 만든 사람이 윤씨부인이다. 그 사실을 지금 윤씨부인은 공포 없이 생각할 수가 없었다. 가엾은 형리, 세월을 물어뜯으며 물어뜯으며 지겨워서 못 견디어 하다가 그 세월에 눌리어 가버린 사람, 최치수는 윤씨부인을 치죄하기 위해 쌓아올린 제단에 바쳐진 한 마리의 여윈 염소는 아니었던지. 사면을 받지 아니하려고 끝내 고개를 내저었던 윤씨부인이기에 매를 버릴 수 없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제단 앞에서 지겨운 시간을 뜯어먹어야 했던 한 마리의 여윈 염소는 아니었던지. 402. 9장 발각.
세상에 착하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고, 나쁘기만 한 사람은 어디 있을까? 그런 봉순네에게 귀녀는 예외였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네라. 다 처지에 따라서 나빠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하고, 제 살기가 편하믄 머할라고 남을 원망 하겠노, 안 그렇나? 사흘 굶으믄 엔간한 사람이 아니믄 맘 잘못 묵기 쉽지.”
삼월에게 그런 말을 했었고 삼월이는 삼월이대로,
"배고프다고 저저이 도둑질 다 한답니까. 창지가 비틀어져도 청백 겉은 사람이사 남우 담 넘겄소?"
김서방댁이 거들어서,
"천성으로 타고나는기라. 서방질하는 년 따로 있고 도둑질 하는 놈 따로 있제.”
했으나 봉순네는,
"그래도 그렇게 말할 거 아니구마. 착한 사람이라고 어디 나쁜 마음 안 묵건데? 그라믄 부처님 안 되겠나? 사람이란 하루에도 몇 분은 나쁜 마음 묵지. 나쁜 사람도 하루에 한 분쯤은 좋은 마음 묵어보고 지은 죄도 무섭아해보고." 405. 9장 발각.
함께 패를 짜고 머리를 맞대던 평산마저 귀녀에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러 사람 잡을 여자로 보였다. 들어올 재물이 기대하던 칠성이는 꿈에서 깬다. 귀녀를 다루더니 따라간다. 함께 어울리던 용이에게 외면받는다. 베틀에 몸이 매여 산 함안댁은 양반 남편 족보에 기대 옛 의식을 버리지 않는다. 함안댁이 가는 마지막은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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