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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김두식

category 글/책을읽다 2023. 1. 17. 11:39

pixabay

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법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 2004년 6월 출판된 책이다. 2011년 12월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개정증보판을 기준으로 해도 10년이 넘는 세월 공백이 있다. 시간이 지났지만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지금 읽기에 무리가 없다. 헌법에는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알고 있지 못해 보호받지 못한다. 경찰, 검찰, 판사, 법원은 친절하게 알려주고 보호하지 않는다. 목적에 맞기 않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기본권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해도 현실은 쉽지 않다. 검찰 수사 착수와 함께 언론은 유죄 여론을 만든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무너지고 피의 사실은 널리 알려진다. 마녀 사냥식 여론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절차는 중요하다. 헌법에 기재된 기본권 침해가 심하며 해석이 현실을 담지 못하고 있다. 저자가 바라본 검찰과 사법부는 여전하다.

 

<법고전 산책>이 고전을 기본으로 알기 쉽게 쓰였지만 어려운 단어들이 더러 등장했다. 그럼에도 고전을 읽는다는 뿌듯함과 쉬운 해석으로 법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시간이었다. <헌법의 풍경>은 어렵지 않다. 저자가 손 잡고 발맞춰 함께 걷는다. 왜 저자가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자신도 그 속에 있었고, 관례적으로 통용되던 시절 본인도 그랬다고 고백한다. 그런 현실이 싫어 검찰을 그만두었고, 대학원 진학 후 교수가 되었다. 

 

여러 사례를 들어 글을 썼다. 그중 30만 원 팬티 이야기를 읽으며 '그분들도 별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비싼 팬티를 샀다는 이유로 검찰에 불려 다니며 불편을 겪어야 했지만, 검찰청에서는 누구든 공평했다. 검사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같다. 기소유예나 전관예우를 기대하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다. 혹은 창피주기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군 훈련소에서 사법연수원 출신들이 보인 모습은 충격이다. 이런 사실들을 저자를 통해서 접했다는 사실은 암울하다. 출판된 지 오래되었으나, 그것을 다룬 뉴스 기사를 접한 적이 없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이해되지 않는 단어가 있다. 리갈 마인드. 이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검찰 행동과 판사 판결을 지켜보면, 그것이 '리갈 마인드'에 의한 것이다.

 

여러 기본권을 인정하는 헌법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세 개 문단이다.

절대적이고 유일한 진리의 존재를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 없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헌법은 그나마 가장 높은 '기준'으로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우리 헌법은 곳곳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대적 진리 찾기'의 정신을 이야기하고 있고, 잠깐만 들여다보아도 헌법과 법률 속 대부분의 규정들이 공정한 절차 확보를 위해 마련된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진리 찾기의 출발점은 '내 생각만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상호 관용의 정신입니다. 43.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헌법은 '그림의 떡' 또는 '잘 포장된 한 장의 종이쪽지'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권력자들은 누구나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인정한다. 그러나'의 논리를 들이대며 자기 눈에 거슬리는 것을 마음대로 제한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막지 못하면 이미 헌법이 아닌 것이지요. 6장 표지.

이것이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기본권을 인정한 헌법 정신입니다. 결국 '관용' 또는 '똘레랑스'라 표현되는 '서로 받아들임'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지요. 231.

 

시인 김수영은 '김일성 만세'라고 말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된다고 말한다.

결국 미국 연방대법원의 입장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요하는 것은 위헌이지만, 국기에 대한 맹세 자체는 위헌이라고 보지 않는 것입니다.

 

저자는 정답을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 문제라고 주장한다.

저는 가끔 우리 사회의 문제는 정답을 지닌 사람들이 너무 많은 데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답을 몰라서 문제가 아니라, 정답을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는 이야기는 얼핏 이해가 잘 되지 않으시지 요? 극단에 선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행복한 일입니다. 극단에 서 있는 사람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은 언제나 옳고, 남은 언제나 틀리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확신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에 두려울 일이 없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그 순수함으로 인해 얼굴에서 빛이 번쩍번쩍 나게 됩니다. 종교적 확신을 가지고 여성들 모두에게 베일을 강제했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지도자들도, 양민 학살에 주저함이 없었던 해방공간의 좌우익 지도자들도 아마 비슷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0) 번과 7) 번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마음 아프게도 이런 분들이 누리는 자유는 다른 사람들의 불행이 됩니다. 이 분들의 확신이 구현되는 세상은 다른 쪽 극단에 선 사람에게는 바로 지옥인 까닭입니다. 63.

 

자신이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도 귀 기울일 텐데. 너무 잘났다. 혹은 잘난 것이 없어 사소한 말다툼에서 이기기 위해 끝까지 우긴다. 세상에는 많은 정답으로 이뤄졌다. 본인이 가진 하나의 정답은 같은 상황에서는 정답이지만 변수 하나가 추가되면 정답은 달라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극단과 극단 사이 회색 지대를 오가는 자는 머리가 복잡하고 아프다. 너무 많은 정답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좁은 시야로 볼 곳만 보는 자는 편안하다. 불편할 이유가 없다.

 

 
헌법의 풍경(개정증보판)(반양장)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헌법의 풍경』. 2004년 출간 후 법학이라는 전문 분야의 글쓰기 방식을 바꾼 최초의 책으로 평가 받으며 언론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은 <헌법의 풍경>이 출간 7년을 맞아 전면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검사 출신 법학자인 저자 김두식은 자신이 직접 체험한 법조계의 어두운 현실을 용기 있게 밝히고, 헌법 정신의 수호자여야 할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특권계급이 되어 법과 시민 위에 군림하는 현실을 통렬히 비판하였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다루었다가 프로듀서와 작가 등이 검찰에 기소당한 문화방송 ‘피디수첩’ 사건을 중심으로 현 정권에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말할 자유’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더불어 곽노현 교육감 사건, 대중가요 가사 심의 문제, 탤런트 장자연 사건 등 법과 인권에 얽힌 최근의 중요한 이슈들을 우리 헌법의 기본 정신과 이념에 기초하여 상세히 분석하였다. ▶ 이 책은 2004년에 출간된 <헌법의 풍경>(교양인)의 개정증보판입니다.
저자
김두식
출판
교양인
출판일
2011.12.26
 
김두식
직업
대학교수, 변호사
소속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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